[徐海山의 얼기설기] 본분(本分)
[徐海山의 얼기설기] 본분(本分)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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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 발전에 1도 이바지하지 않은 축에 든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도 데면데면할 뿐 아니라 극장을 찾는 수고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충분한 숙면에도 영화관에만 가면 어찌나 잠이 쏟아지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본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다.

내가 영화를 접하는 통로는 설이나 추석 때 TV에서 명절 특집으로 방영할 때다. 이미 뉴스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로 영화의 줄거리나 에피소드를 읽고 들은 뒤라 특별한 감흥은 없다. ‘시간 때우기’에 가깝다. 외국 영화는 자막 읽기가 귀찮아 자동으로 거른다. 어쩌다 한해 두어 편 볼 때도 있지만, 영화관에 가는 일은 수년에 한 번이다. 연례행사에도 미치지 못하는 발걸음이다. 2012년 ‘26년’, 2013년 ‘변호인’, 2017년 ‘택시운전사’, 2018년 ‘1987’이 지난 10년간 극장에서 직접 본 영화다.

굴곡진 현대사를 관통한 소재를 다룬 영화를 주로 봤다. 책에서 읽고, 영상으로 봤던 익숙한 장면들이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낯설진 않아 몰입감은 높았고, 동질감도 느꼈다. 때론, 눈물을 훔쳤고, 분노도 했다. 울분(鬱憤)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자막이 올라간 뒤 후련함보다는 마치 사이다 없이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함이 무겁게 짓눌렀다. 동화 속 권선징악(勸善懲惡)이 현실 세계 속에서는 실현되지 않는 숱한 사례를 목도했던 기시감(旣視感)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서울의 봄’을 보러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영화는 봄을 갈망했지만 끝내 겨울의 연장을 알리는 도화선이 됐던 12·12 반란 사태를 재조명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체감도는 훨씬 높았다. 주요 인물의 이름만 살짝 바꿨을 뿐, 모든 게 그때 그대로였다.

감독의 연출이 어떻니, 배우의 연기가 어떻니 하는 것은 나한테 주제넘은 얘기이고,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이 반란군과 진압군으로 맞서야 했던 상황이 다시 곱씹어 봐도 비극적 장면이다. 권력 찬탈에 눈이 먼 소수의 반란군에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맞섰던 몇몇 진압군을 제외하고 무능과 무기력을 보여준 다수의 군 지휘관의 행태에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정말로 국군끼리 교전에 따른 희생을 걱정했을까, 아니면 북한군이 휴전선을 밀고 내려올까를 우려했을까. 둘 다 아니었다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내린 판단이다.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고, 자신의 보신에 급급한 비겁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나는 이 지점에서 본분(本分)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진압군을 빼고 본분을 지켜낸 군인은 없었다. 반란군은 본분을 뿌리째 짓밟아버렸고, 다수의 군 지휘관은 본분을 잊었거나 망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본분을 뭉개버리고, 망각한 대가는 부와 권세라는 달콤함이었다. 세월이 흘러 역사적 사법적으로 단죄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시늉에 그치고 말았다. 반란군은 물론 그의 후손들까지 여전히 호의호식(好衣好食)이다. 하지만, 진압군은 어느 정도 명예는 회복됐지만, 후손들은 멸문지화(滅門之禍)에 버금가는 비참함을 겪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뜻의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는 글자를 남겼다. 파편처럼 흩어진 진실의 조각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지만, 정의가 이겼을까?. 여름밤처럼 짧아야 했던 반란군의 영광은 겨울밤처럼 길게 이어지고, 겨울밤처럼 길어야 했던 진압군의 영예는 여름밤처럼 짧게만 느껴진다. 44년 전 12월 12일은 본분(本分)을 버린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결이었다. 그대들, 전두광을 꿈꾸지 마시라.

徐海山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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