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길 칼럼] 퇴행의 두 가지 모습
[이병길 칼럼] 퇴행의 두 가지 모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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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은 뒤로 물러섬을 말한다. 때로 퇴행은 아름다운 법이다. 오늘날 지구 온난화가 심각화하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입장에서 과거적 삶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삶은 때로는 긍정적일 수 있다.

기후변화의 위기 원인의 하나로 육식 문화가 거론되고 있다. 지나친 육식 위주의 식생활 습관으로 많은 숲이 초목지로 바뀌고 있다. 지구의 허파라는 숲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에 뜻있는 사람은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습관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코로나19 시절에 많은 사람이 이동을 하지 않아 자동차를 보기 어려웠고, 전 세계의 굴뚝 공장은 생산을 줄였다. 우리는 희뿌연 하늘만 보다가 그 영향 때문인지 요즘은 맑은 하늘을 계속 마주한다. 공업화의 영향으로 우리의 삶은 더욱더 편리해졌지만, 각종 자동차에 뿜어 나오는 매연은 호흡을 질식하게 한다. 이에 BMW 족들이 등장하고 있다. 즉 버스 타기, 지하철 타기, 걷기를 생활화하는 퇴행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퇴행적 삶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해 잠시 뒷걸음질 치는 삶이다. 그런 삶을 스스로 추구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미래는 더욱더 좋아질 것이다. 맑은 구름, 파란 하늘을 보면, 때론 퇴행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퇴행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의 퇴행은 아름답지만 한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물러섬은 나쁜 일이다. 몇 년 전, 뒤로 걷기 운동을 하던 지인이 달려오는 자동차와 부딪혀 사망한 일이 있었다. 운전자는 퇴행하는 것을 앞으로 걷는 것으로 착각했다. 퇴행은 과거에서 보면 정상이지만, 미래에서 보면 비정상이다. 최근 울산시가 퇴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다.

인류는 자유와 평등, 박애, 민주주의,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 왔다. 그런데 내년이 되면 ‘울산 민주화운동 기념센터’와 울산시민단체(NGO) 법인이 만든 ‘공익활동 지원센터’, 울산노동인권센터 등이 문을 닫거나 제 기능을 못 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정치 이념에 따른 평가에 앞서 이들 기관이 울산 시민의 보편적 삶의 질을 높이는 보루인데 아쉬움이 많다. 2026년부터 유럽연합(EU)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탄소 국경세를 내야 한다. 인권 경영을 하지 않았을 경우, 수출 규제가 있을 수 있다. 세계는 이처럼 지구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살리는 길로 가는데 울산시는 퇴행하는 것 같다.

문화 예술은 인류의 삶의 질을 다양화하고 풍부화했다. 문화 예술의 창조성은 다양성을 인정함에 있다. 그런데 2024년 울산시 당초 예산 편성을 보면, 울산지역 문화 예술 단체에 대한 지원의 불균형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어떤 단체는 예산을 신청해도 0원이었다. 물론 역사와 규모에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계속 활동해 온 지속적 사업에 대해 지원을 끊는 것은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울산 문화 예술의 불구화, 불균형을 가져올 것이다.

내년 예산 중에서 불꽃 축제 예산이 올해보다 3억이 늘어났다고 한다. 불꽃 쏘아 올림에 환호하는 짧은 순간 대신에, 지원해 주지 않은 문화예술인과 단체 30곳에 1천만 원을 지원한다면, 일 년 52주 중 30주에 각종 문화 예술 행사가 가능하다. 이는 문화 예술을 즐길 다양성이 풍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퇴행이 때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퇴행은 우리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가급적 우리는 아름다운 퇴행이 많기를 바랄 뿐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부족할 때 퇴행이 발생한다. 퇴행이 지나치면 정상으로 회복되는 데에는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퇴행은 삶의 질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퇴행은 사람과 지구를 살리고 돌볼 때 아름답다.

작가·지역사 연구가 이병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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