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직선과 곡선의 차이
영화 ‘서울의 봄’ 직선과 곡선의 차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0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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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直線)’이란 게 그렇다. 곧게 뻗어 있다. 해서 직선은 딴생각을 할 수가 없다. 이미 미래가 정해져 있기 때문. 아니, 과거, 현재, 미래 어느 시점이든 직선이 가는 길은 같다. 한결같고 투명하다. 또 강직하다. 곧 죽어도 하늘을 향해 직진만 하는 대나무가 대표적이다.

반면 ‘곡선(曲線)’은 종잡을 수가 없다.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어디로 향해갈 지 예측이 어렵다. 시시각각 변하는 만큼 투명하지도 못하다. 이 지구상에는 태생적으로 곡선으로만 움직이는 동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뱀이 그렇다.

이처럼 선(線)의 움직임에 관해선 직선과 곡선 두 종류가 존재하듯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바로 직선형의 인간과 곡선형의 인간. 1979년에 일어났던 12.12 군사 쿠데타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서울의 봄>을 보면서 이렇게 직선과 곡선의 차이를 생각해보게 됐던 건, 극 중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이 두 부류로 뚜렷하게 구분이 됐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게 느끼겠지만 전두광(황정민) 보안사령관을 필두로 한 신군부에 맞서 그들의 반란을 저지하려 했던 이태신(정우성) 수도경비사령관은 전형적인 직선형의 인간이다. 군인으로서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 그는 신념에 가득 차 있었고, 그에 따라 올 곧게 직선으로 행동했다.

이런 이태신 수경사령관과 대측점에 선 전두광 보안사령관은 악당인 만큼 곡선형의 인간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도 직선형의 인간이다. 그날 밤, 군인으로서 본분을 져버린 채 손에 쥔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그 목표를 위해 그는 분명 직선으로만 움직였다. 다만 그 선의 색깔이 검을 뿐.

 

그렇다. 깊이 들여다보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서울의 봄>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이태신 역을 맡았던 배우 정우성은 가수 성시경이 운영하는 유튜브에 게스트로 출연해 김성수 감독은 영웅과 악당이 아닌 그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체 곡선형의 인간은 누구인 걸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영화에선 이태신과 전두광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곡선형의 인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이태신 수경사령관 쪽에 그와 몹시도 닮은 직선형의 인간으로 특전사령관 공수혁(정만식) 중장과 헌병감 김준엽(김성균) 준장이 있다면 전두광 합수부장 쪽에는 그의 절친으로 9사단장인 노태건(박해준) 소장 정도가 있겠다. 아무튼 대다수를 차지하는 곡선형의 인간들은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요리조리, 혹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를 반복한다. 그 즈음, 전두광이 친구 노태건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명령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지? 근데 사실 그들은 강력한 누군가가 이끌어주는 것을 바라고 있는 거야.” 이 영화, 곱씹어보면 한 편의 추상화 같다. 하늘 높이 곧게 뻗은 네다섯 그루의 대나무 사이를 수 많은 뱀들이 엉켜서 움직이는 그런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은 영화를 벗어나 실제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을까.

참, 오해는 마시길. 지금까지 영화 속 인물들을 직선과 곡선으로 나눴던 건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만일 뿐, 그 이전과 그 이후는 다를 수 있다. 대나무도 뿌리는 곡선이고, 뱀도 죽을 땐 가끔 일직선으로 쭉 뻗기도 하니까. 이 말인 즉은 옳고 그름이라는 것도 절대적이지 않고 변한다는 것. 이렇게 반란을 일으켜 대통령이 된 전두환 5공 정권의 국정 슬로건이 ‘정의사회구현’이었다고 하니. 참나, 개가 웃겠다. 하긴, 극 중에서 전두광도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그렇다. 동네 사람 열 명을 죽이면 연쇄살인마라 하는데 전쟁을 일으켜 이웃나라 사람 수만 명을 죽인 자는 도리어 영웅이 되는 게 인간세상 아니던가.

해서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을 통해 생각해 봐야할 건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만은 아닌 거 같다.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18년 동안 절대권력을 누렸던 박정희 정권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쓰러지자마자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잡았다. 서울의 봄을 기대했건만 역사는 그렇게 반복됐고, 그 색이 하얗든 검든 지금도 세상은 하늘 높이 치솟은 대나무 몇 그루 사이를 수많은 뱀들이 엉켜있는 모습이지 않나.

그건 이 세상이 굴러가는 근본 매커니즘이자 운명같은 것이기도 한데 솔직한 이야기로 내가 만약 그 시절 육사 생도였고, 친구 중에 전두환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나 역시 휩쓸리지 않았을 거라곤 장담 못할 거 같다. 원래 친구란 건 선택할 수 없으니까. 내가 정우성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다만 심약한 존재인 만큼 선(線)은 고사하고 그저 흐릿한 점선 정도로 남아 그들을 지켜봤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그나저나 지난해 <헌트>라는 작품에서도 말했지만 전두환은 죽어서도 참 괴롭겠다. 아니 괴로워야지. 저지른 일(작용)이 있으니 이런 영화들(반작용)이 계속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게 또 거스를 수 없는 우주만물의 법칙이기도 하고. 아무튼 영화의 위대한 힘이란. 그러게 이 양반아. 살아생전 진심어린 사과 한 번이라도 하고 가지. 으이구. 2023년 11월 22일 개봉. 러닝타임 141분.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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