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리 쓴소리] 담배 이야기 (下)
[단소리 쓴소리] 담배 이야기 (下)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0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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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금연 세대’란 말이 사전에 언제쯤 오를지 지켜보는 것도 잔재미는 있었다. 그런데 웬걸, 이 뉴질랜드산 신조어는 빛도 못 본 채 폐기처분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평생 금연 세대’란 말은 우리 정부의 금연 캠페인 구호 ‘NO 담’(NO+담배)보다 좀 더 센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난해 제정돼 내년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던 뉴질랜드 금연법의 내용이 너무도 서슬 파랬던 탓이다. 2027년에 성인이 되는 2009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에게는 담배를 한 개비도 못 팔게 한 이 법은 그러나 뉴질랜드에 새 보수 연정이 들어서면서 난파 일보 직전에 이르고 만다. ‘새 정부의 헌 정부 흔적 지우기’란 지구촌 공통의 정치 언어가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뉴질랜드 전임 노동당 정부의 금연법은 △담배 판매가 가능한 매장을 현재의 10% 수준으로 줄이고, △담배의 니코틴 허용치를 낮춘다는 내용도 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법’이라는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관심이 가는 것은 지난 10월, 6년 만에 재집권한 뉴질랜드 보수 연정이 이 ‘골초 원천퇴치법’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기로 한 진짜 이유다. 그것은 ‘감세 재원 마련’, 달리 말해 ‘세수 부족’ 때문이라 했다. 우리나라처럼 담배가 국가재원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해 왔다는 얘기다.

니콜라 윌리스 신임 뉴질랜드 재무장관은 지난 11월 25일, 전 정부의 금연법을 내년 3월 전에 폐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담배 판매 수입이 연정의 감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현지 방송에도 출연해 담배를 파는 상점 수를 제한하면 정부 수입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크리스토퍼 럭슨 신임 총리는 “금연법 폐지로 음지에서 담배 시장이 나타나는 것을 막고 담배 상점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라디오 뉴질랜드(RNZ)에 나와 “작은 마을에서 한 상점에만 담배를 집중적으로 유통하면 범죄의 거대한 자석이 될 것”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그러자 보건 전문가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공중보건 전문가인 리처드 에드워즈 오타고대 교수는 BBC 인터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우수한 보건 정책을 퇴행시키는 일”이라고 쓴소리를 퍼부었다. 비정부 기구 아오테아로아 건강연합 의장인 리사 테 모렌가 교수는 금연법이 시행될 경우 앞으로 20년간 의료체계 비용 13억 뉴질랜드 달러(약 1조 300억원)를 줄이고 여성의 사망률을 22%, 남성 사망률을 9% 낮출 수 있다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상기시키면서 새 정부의 정책 변경을 비꼬았다.

어쨌거나 뉴질랜드 진보 정권의 강력한 금연정책은 호주와 덴마크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도 크고 작은 파문을 일으킨 게 사실이다. 영국 정부는 담배를 살 수 있는 법적 나이를 매년 한 살씩 높여 2009년 1월 1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도 담배를 살 수 없게 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2032년까지 ‘담배 없는 세대’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프랑스 정부는 바다와 공원, 숲, 학교 근처를 금연 구역으로 지정하고 담뱃세도 올리기로 했다. 캐나다 정부는 2035년까지 흡연율을 5% 미만으로 줄이겠다는 목표 아래 내년부터 담배 개비마다 경고문을 붙여 팔기로 했다.

뉴질랜드를 본받아 좀 더 근사한 금연정책을 추진해보겠답시고 머리 싸매던 나라들은 지금 어떤 처지이고 그 뒷얘기는 어떻게 전해지고 있을까. 그중에는 이들 정부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허탈해하는 사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정부가 있다는 뜬소문도 들린다. 하지만 표정관리에 들어간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인지 아닌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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