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공양 자화장’이라니요?
‘소신공양 자화장’이라니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0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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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의 큰 어른 자승 스님이 11월 29일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칠장사를 방문해 요사채(=스님들이 머무는 곳)에 머물다가 불이 났고 스님은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자승 스님은 2009년 50대에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데 이어 2013년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4년 임기의 총무원장직을 두 번(제33·34대)이나 채운 유일한 분이다. 1986년 총무원 교무국장을 시작으로 규정국장, 재무부장을 거치며 종무행정을 익혔고, 1992년 10대 중앙종회 의원에 선출된 후 1996년 11대 중앙종회 사무처장과 12·13·14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하며 조계종의 대표적 행정승으로 인정을 받았다.

자승 스님은 2002년, 2010년, 2011년 세 차례에 걸쳐 남북 불교 교류 활성화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 바 있고, 종단 개혁을 비롯해 다양한 일들을 추진했다. 퇴임 후 2021년에는 학교법인 동국대 건학위원회 고문 겸 총재직을 맡아 조계종 내 가장 큰 권력 2개를 한꺼번에 잡음으로써 ‘조계종의 실세’라는 평도 받았다.

조계종에 따르면 자승 스님의 차량에서는 유서와 열반게(涅槃偈=스님이 입적에 앞서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남기는 말이나 글)가 같이 발견되었다. 칠장사 주지 스님과 경찰에 보내는 유서에는 “이곳에서 세연(世緣=세상의 인연)을 끝내게 돼 민폐가 많았소. 이 건물은 상좌들이 복원할 겁니다. 미안하고 고맙소. 부처님 법 전합시다.” “(경찰은) 검시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인데, CCTV에 다 녹화돼 있으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길 부탁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열반게에는 “생사가 없다 하니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글을 남겼다.

조계종은 “자승 스님이 소신공양(燒身供養=자기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치는 일)으로 자발적 분신을 했으며 종단 안정과 전법도생을 발원하면서 소신공양 자화장(自火葬=장작더미에 올라가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라 부처에게 공양하는 일)으로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불교계 일각에서는 한때 고인이 최근까지 왕성하게 활동해 유서를 남길 근거가 희박하다며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또한, 자승 스님이 사망 이틀 전까지도 포교 의지를 강하게 보인 사실을 들어 ‘자발적 분신’ 설에 의문을 보이는 인사도 있었다.

조계종에서 자승 스님의 죽음에 대해 밝힌 것은 ‘소신공양 자화장’이었다. 사태를 빨리 수습하고 스님의 죽음을 잘 포장해서 마무리하려는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겠지만 여러 정황으로 봐서 타살이 아니라면 방화로 인한 분신자살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방화나 자살은 범죄행위이며, 어떤 누가 어떤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했든 자살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자살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얼마나 큰데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번이나 지내고 요직을 두루 거친 불교계의 어른이 자살했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조계종에서는 종단의 어른이 분신자살하여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문부터 발표하는 것이 옳지 않았겠는가.

고대 원시종교에서는 숭배하는 신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자식을 불길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이 있었지만 21세기에 자신을 불살라 부처님께 공양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자살률 세계 1위의 불명예를 가진 우리나라가 아닌가. 한편에서는 자살 예방을 위해 애쓰는 분들이 있는데 불교계의 거물이 자살한 뒤에 ‘소신공양 자화장’이라는 말로 포장하면 자살 예방을 위해 애쓴 분들의 노고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만약 기독교에서 교단의 총회장이나 대형교회 목사가 아니라도 작은 교회 목사가 교회에서 불을 내고 분신자살했다면 혹독한 비난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사람의 죽음 자체는 애도할 일이지만 자살한 스님에게 훈장을 추서하고 대통령 부부가 가서 조문하는 모습이 행여나 자살도 멋있다는 인상을 심어줄까 걱정스럽다.

누구나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므로 자살은 비난받아 마땅하며 정당화되거나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태복음 16장 26절)

유병곤 새울산교회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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