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동행 ‘은빛독서회’
눈부신 동행 ‘은빛독서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03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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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첫째 수요일은 마음 그득해지는 날이다. 중부도서관 은빛독서회 회원들을 만나 시낭송 강좌를 열기 때문이다. 내 나이 30대 끝자락에 강의해 드린 분들을 50대 중반이 되어 다시 만나니 함께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라 감회가 무척 새롭기도 했다.

낭송할 시를 매달 공지하면, 미리 필사해두었다가 펼쳐 보이는 분도 계신다. 공책에 그대로 옮겨 쓰다 보면 시가 가슴속에 오롯이 들어와 자리 잡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의 낭송이 어르신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순간도 더러는 있다. 그럴 때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차오른다. 감동이 클 때는 우리 몸속에 다이돌핀이 만들어진다는데, 이런 ‘감동 호르몬’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른다.

어르신들이 굽이굽이 인생의 언덕을 넘어오면서 뜻하지 않게 상처받은 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시는 그런 아픔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정신적 위안과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선물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늘 시를 마음속에 담으면서 정서적 안정을 되찾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반응하는 힘도 조금씩 키워가고 있다.

시와 연계된 경험담을 서로 나눌 때는 언제나 시간이 모자라 아쉬워한다.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가슴 깊이 차곡차곡 간직해온 사연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심중에 묻어 두었던 첫사랑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유년 시절의 따스한 기억이나 지난한 삶의 흔적들을 되짚다 보면 어느새 사연을 말한 분에게 빙의라도 되는 듯 가슴 아파하면서 서로를 위로해주기도 한다.

오래전 군 복무를 하다 하늘의 별이 된 아들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사는 어르신의 사연을 들으니 나 역시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시를 암송하며 스스로 위안을 얻고 표정도 밝아지는 모습을 보며 시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깊이 어루만져주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은빛독서회에는 청일점 회원이 한 분 계시는데, 유머 가득하고 구수한 입담은 회원들의 얼굴에 미소 꽃을 활짝 피우기에 모자람이 없다. 건강 악화로 장기간 입원 중일 때도 특별 휴가를 얻어 부산에서 울산까지 오셔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에는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70 후반 연세에도 5분 분량의 긴 시를 암송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발표회나 공연이 있을 때 오카리나 연주로 감동의 선율을 가슴에 심어주는 분도 계신다. “아무리 짧은 시라도 저는 도저히 외울 수가 없어요.”라며 걱정하시던 회원 한 분은 많은 필사와 끊임없는 연습 끝에 너끈히 암송하는 보람을 얻으시기도 했다. 어르신 중에는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지인들에게 시를 낭송해 주신다는 분도 계신다. 그분의 낭송을 들은 분들이 마음의 보약을 한 첩씩 먹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수업할 때마다 어르신들이 빈손으로 오시는 법은 거의 없다. 약밥과 김밥을 성의껏 만들어 오시거나 과일 같은 간식도 준비해 오신다. 소소하게 나누는 그런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회원들 사이에 정이 더한층 두터워지는 것 같다.

다른 강좌에는 간혹 결석하는 사람이 있어도, 은빛독서회는 집안 행사나 건강 문제가 아니면 거의 모두 빠지는 일이 없다. 높은 출석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회원들끼리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따스한 분위기, 그리고 회원 한 분 한 분의 마음까지 챙겨주시는 회장님과 총무님의 아름다운 봉사가 한몫했을 게 틀림없다.

은빛독서회 회원들과 함께 손을 잡고 시낭송의 뜰을 오래오래 거닐고 싶다. 보석같이 귀한 시를 캐내어 소중한 분들의 마음속에 심어주는 일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니까.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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