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뉴 노멀’- 일상이라는 공포영화
영화 ‘뉴 노멀’- 일상이라는 공포영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1.3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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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뉴 노멀'의 한 장면.
영화 ‘뉴 노멀'의 한 장면.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우린 보통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런 영화 같은 일이란 게 흔한 일이 아니다 보니 평범한 일상을 영화 속 이야기의 반대 개념으로 많이들 생각한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영화계에선 흔한데 대표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을 들 수가 있다. 화면톤 자체가 일상과 몹시도 닮은 그의 작품에선 인물들 간의 대사나 행동들이 가끔 낮 뜨겁긴 해도 귀신이나 외계인, 혹은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이 등장한 적은 없다. 심지어 영화 속에선 흔해 빠진 살인마저 그의 작품에선 없었다.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살인현장을 한번 목격하기 어렵듯이. 그래도 그의 작품은 엄연히 영화다.

그런데 <뉴 노멀>은 그런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하는 작품인데도 살인은 기본일 정도로 섬뜩하기 그지없다. 총 6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옴니버스식 영화인데 6명의 주인공들이 겪는 일상은 모두 죽음과 깊이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화면톤만 비슷하지 홍상수식 일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 제목이 ‘새로운 표준(뉴 노멀)’인 건 갈수록 잔인하고 기괴해져 가는 ‘우리들의 새로운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면 총 6개의 에피소드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죽음 이전에 인간의 욕망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욕망의 실체는 결국 각자가 원하는 ‘행복’이었다. 어떤 이에게 그 행복은 성욕 같은 원초적인 욕망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순수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또 어떤 이에게 그것은 평소에 잘 안 해 봤던 착한 일이기도 했고, 어떤 이는 돈이나 명예 같은 성공에 대한 욕망이었다. 그렇다. 우리들의 새로운 일상이 갈수록 잔인하고 기괴해져 갔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에 있었던 게 아닐는지. 아니다. 행복이라는 듣기 좋은 탈을 쓴 각자의 욕망에 있었던 거다.

그렇다고 <뉴 노멀>은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 당위성을 부여하진 않는다. 인간이 행복을 좇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니까. 어디 뭐 세계평화나 인류공영을 위해 사는 사람 있어요? 그 속에서 옳고 그름이란 쉽게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하다못해 도덕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잘 없다. 다들 자기 행복, 즉 이익을 위해 살지. 바로 두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이 ‘옳은 일을 해라’라는 까닭이기도 하다. 개뿔, 옳은 일을 했더니 죽음이 기다리고 있더라니.

아무튼 공포영화를 주로 만들어 온 정범식 감독은 그냥 있는 그대로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면서 “이렇듯 우리들의 일상은 지금 한 편의 공포영화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허나 ‘뉴 노멀(New Normal)’이 아닌 일찍이 ‘노멀(Normal)’ 단계에서도 일상은 공포영화였지 않을까? 태어난 뒤 아주 어렸을 땐 아장아장 걷다 넘어지고 나면 세상 무섭게 울어 댔고, 어느 정도 커서는 엄마의 잔소리가 공포스러워진다. 그러다 학교에 들어가면 정기적으로 치르는 시험에 떨고, 가끔은 무서운 선생님이나 교우 관계에서도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사회로 나가 보자. 어른이 된 만큼 돈이야 벌겠지만 그간 방패막이 되어준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난다는 두려움이 앞서고, 직업과 연봉에 따라 계급이 나눠지는 자본주의 경쟁사회 앞에 떨게 된다. 또 연애할 땐 이별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다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남자든 여자든 서로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끌어가야 하는 무게감 앞에 마음 한켠에선 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지켜야 할 이들이 생겼으니까. 해서 더러워도 버터야 하는 직장생활에선 일 못 한다는 평가와 동기들보다 뒤쳐질 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은근히 시달리게 된다. 짜더러 사장이라고 다를 건 없다. 수익을 내야 하는 고민만으로도 머리 아픈데 한 달에 한 번뿐인 월급날은 왜 그렇게 빨리 오는지.

나름 한참을 적었는데도 아직 남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죽을 병에 혹시나 내가 걸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전쟁에 대한 공포, 화산 폭발이나 지진, 혹은 소행성 충돌에 대한 공포, 부모와 이별하는 공포, 무엇보다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한 가지로 나도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막연한 공포가 가장 크지 않을까. 진짜 공포가 천지빼까리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있으면 말해 보시길. 그렇다. 산다는 건 한 편의 긴 공포영화가 아닐까. 이런 공포의 바다 속에서 지금 별 일 없이 걍(그냥) 하루하루 살고 계신다고요? 행복하시겠네요. 2023년 11월 8일 개봉. 러닝타임 113분.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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