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도(瑟島)에서는 정말 거문고 소리가 날까?
슬도(瑟島)에서는 정말 거문고 소리가 날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1.3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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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동구 방어진에 슬도(瑟島)라는 섬이 있다.

현무암인 이 섬의 바위에 파도가 부딪치고 쓸려 나갈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명이 슬도 입구에서 보인다. 혹은 비파소리라고도 한다. 설명이 적힌 안내판은 울산시 동구에서 제작해 설치했다.

아마도 슬(瑟)이라는 글자를 거문고나 비파라고 새겼기 때문에 생겨난 말인 듯하다. 실제로 시중의 작은 옥편에는 슬(瑟)의 훈을 ‘큰 거문고’ 또는 ‘비파’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방어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어느 일본인의 글에서는 이 섬을 ‘나마코시마’라 부르고 있었다. 역시 방어진 출신 일본인 할머니가 기억을 더듬어 달력 뒤에 그렸다는 방어진 약도에도 ‘나마코시마’라는 표기가 보인다. 나마코는 해삼이라는 말이다. 방어진에 살았던 일본인들은 이 섬의 모양이 해삼과 닮았다고 해서 ‘나마코시마’라 불렀던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 슬도에서 거문고 소리가 날까? 슬도에서 거문고 소리를 들은 사람은 있을까?

큰 자전(字典)에서 찾아보니 슬(瑟)은 거문고도 아니고 비파도 아니었다. 슬(瑟)은 금(琴)이라는 악기와 함께 문묘제례악에 쓰이던 악기였다.

거문고보다 크면서 비슷하게 생겼다고 ‘큰 거문고’라고 새기는 것은 잘못이다. 비올라나 첼로를 ‘큰 바이올린’이라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파는 생김새가 전혀 다르다.

조선 성종 24년(1493년)에 편찬된 국악이론서인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슬(瑟)을 “길이가 7척 2촌이고, 너비가 1척 8촌으로 모든 현악기 가운데서 가장 크다. 줄은 25현이며 그 중 가운데 줄, 즉 붉게 물들인 제13현은 윤현(閏絃)이라 해서 사용하지 않고 안족(雁足)은 담괘(??, 현악기에서 줄을 거는 턱) 쪽으로 물려 세워 놓는다”고 설명돼 있다.

‘세종실록’에는 “우리나라에서 금(琴)과 슬(瑟)은 율음(律音)에 맞추어 연습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라는 설명도 있다.

현재 악기는 전해져 있는데 연주법은 실전됐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문묘제례악의 등가에 금과 슬을 진열은 하되 연주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이가 좋은 부부를 ‘금슬이 좋다’라고 하는 말도 금과 슬의 연주소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명에 슬(瑟)자가 더러 보인다. 제주도 모슬포(摹瑟浦), 대구 비슬산(琵瑟山) 등이다. 신라시대 강릉지역은 하슬라(何瑟羅)였다. 여기 나오는 슬(瑟)자들을 악기 슬과 연관지어 푸는 것은 무리다. 슬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음(音)만 빌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일반인들이 문묘제례악에서 쓰이는 악기를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 연주를 감상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슬이라는 악기는 지방민들에게 전혀 친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 섬의 파도 소리를 듣고 슬을 연상했을 수는 없다.

슬도 입구의 안내판에는 이 섬을 시루섬이라고도 불렀다는 설명이 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시루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슬도(瑟島)라 했을 가능성도 크다.

언어학이나 지명사(地名史)에 문외한인 내가 단정할 사안은 결코 아니다. 다만 슬도(瑟島)라는 표기로 ‘이 섬에서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설명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임에 틀림없다.

슬도는 방어진의 관광명소일 뿐 아니라 방어진항을 보호하는 자연 방파제 역할도 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슬도의 지명에 대한 관련 전문가들의 명쾌한 해설을 기대한다.

강귀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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