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리 쓴소리] 담배 이야기 (中)
[단소리 쓴소리] 담배 이야기 (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1.2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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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연가(愛煙家)’의 낮춤말에 ‘골초’란 것이 있다. 사전상의 뜻은 ‘담배를 몹시 많이 피우는 사람’이다. 된소리로 ‘꼴초’라 하면 경멸의 느낌이 더 보태진다. 영어로는 줄담배꾼을 뜻하는 ‘chain smoker’와 사촌지간쯤 되는 ‘heavy smoker’가 제격이지 싶다.

그러나 어원은 또렷하지 못한 것 같다. ‘골-’과 ‘-草’의 합성어(‘골+草’)인 것만은 분명한데 ‘골-’에 대한 뜻풀이는, 내가 미련한 탓일까, 아직은 찾지를 못했다. 그래서 억지 같은 지론을 한 번 갖다 붙여 보기로 한다. ‘골통’(=말썽꾸러기나 머리가 나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또는 ‘꼴통’이란 말과 연결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담배를 끊은 지 10년이 가깝지만 나도 한때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골초였다. 하루 세 갑도 피워 없앴으니까. 그때마다 ‘글 쓰는 사람한테는 담배가 필요해’라며 자기합리화를 골백번은 했지 싶다. 사실 기사나 칼럼을 쓸 때 담배는 필요악(必要惡) 정도로 치부했다. 실제로 집중력을 길러 주는 효험이 없지는 않았다. 안 그러면 늘 ‘2% 부족’ 느낌이 들곤 했다. 시인(詩人)에게 시상(詩想)이 안 떠오를 때처럼….

담배라면 이분을 따라잡을 대가가 또 있을까. ‘연아일체(煙我一體) 30여 년’이란 표현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공초 오상순(吳相淳) 시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호(號) 가운데 하나는 ‘비우고 초월한다’는 뜻의 ‘공초(空超)’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공초’는 그의 별명 ‘꽁초’에 한자(漢字)를 억지로 갖다 붙인 게 아니라고 누가 끝까지 우길 수 있겠는가?

하루에 200개비(혹자는 180개비)를 연기로 날려 보냈다면 그야말로 기네스북감이다. 요즘 잣대로 계산하면 20개비들이 담배 10갑을 태운 셈이니 상상만 해도 어질어질해진다. 그런 골초 선생께서 1956년 <현대문학> 7월호에 기고한 수필 〈애연소서(愛煙小?)〉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내가 싫어하는 글자는 금연(禁煙)이라는 두 자다. 이 두 자를 볼 때는 무슨 송충이나 독사를 본 것같이 소름이 끼친다. 이 두 자가 멋없이 걸리기를 좋아하는 버스나 극장은, 그래서 도무지 가까이하고 싶지가 않다.”

그런데도 그분은 장수하지 않았느냐며 흡연을 은근히 두둔하는 분들이 있다. 하긴 1894년 8월에 태어나 1963년 6월에 이승을 하직했으니, 우리 나이로 70까지 장수를 누린 것은 맞다. 일본 도시샤대학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하고 한때 교회 전도사도 지냈던 그가 서른 전까지 담배를 입에 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내친김에 30여 년을 끽연(喫煙)에 탐닉했다는 그의 시 한 편 <나와 시와 담배>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 보자.

“나와 시와 담배는/ 이음동곡(異音同曲)의 삼위일체/ 나와 내 시혼은/ 곤곤히 샘솟는 연기/ 끝없이 곡선의 선율을 타고/ 영원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刻刻) 물들어 스며든다.”

공초 선생이 작고한 지 60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분의 취향을 흠모해 마지않는 이들은 아직도 희뿌연 연기 내뿜는 일을 대단한 인생의 낙(樂)으로 여기길 서슴지 않는다.

누군가 이런 넋두리를 올린 걸 인터넷에서 보았다. “생각의 실마리를 이을 때, 발끈했다가 여유를 돌이킬 때, 어느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어 그것을 채워야 할 때, 입안이 텁텁하고 안 좋을 때가 담배를 피워야 하는 때로 되지만, 한번 피우기 시작한 사람에겐 거의 ‘습관성’이 되어 버리고 있는 담배….” 차마 끊지 못해 그랬을까, 아니면 끊지 못하는 이들이 측은해 보여서 그랬을까?

그래도 담배는 오늘도 지지층 넓히기에 여념이 없다. 그 긴 역사성을 자랑하면서….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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