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과 황곡(黃鵠)
닭과 황곡(黃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1.2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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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전요(田饒)와 애공(哀公) 이야기가 나온다. 노(魯)나라 사람 전요는 노나라 왕 애공을 정성을 다해 섬겼으나 왕은 그의 비범함을 제대로 깨닫고 인정하지 못했다.

어느 날 전요가 애공에게 닭과 황곡(黃鵠=고니)을 앞세워 자기 이야기를 했다. 먼저, 닭 이야기로 가까이에 있는 충신을 비유한다. 닭은 문(文)·무(武)·용(勇)·인(仁)·신(信)의 다섯 가지 훌륭한 덕을 지녔지만, 왕은 날마다 닭을 잡아먹는다. 그 이유를 ‘닭이 사람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다음, 황곡을 생태에 비유한다. 황곡은 천 리 먼 길을 날아와 임금의 원지(園池)에 사는 어별(魚鱉=물고기와 자라)을 잡아먹고, 서량(黍粱=기장)을 쪼아먹으면서 피해를 줘도 그냥 두었다. 그 이유는 멀리서 날아와 임금 곁에 항상 머물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전요는 자신을 오덕(五德)을 갖춘 닭에 비유했고, 황곡은 원지를 찾아 어별과 서량만 축내는, 자신과 맞비교되는 사람을 비유했다.

전요는 결국 애공의 곁을 떠나 자기를 인정해주는 연(燕)나라로 갔고, 그곳에서 재상이 되었다. 전요는 정치를 도운 지 삼 년 만에 연나라를 태평성대의 나라로 만들었고, 많은 사람이 이를 칭송하여 노래했다. 그리고 나라에는 도적이 사라졌다. 애공이 이 소문을 듣고 크게 후회하고 탄식하며 석 달이나 내실에 들지 않고 가혹한 형벌도 줄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가까이 있는 인재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아쉬움이 현재뿐만 아니라 옛날에도 있었다는 사실에 잠시 머뭇거려진다. 선가(禪家)에 지월(指月=‘가리키는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본다’는 의미)과 사자교인한로축괴(獅子咬人韓?逐塊=‘사자는 사람을 물고 개는 흙덩이를 쫓아간다’라는 이야기)라는 비유가 있다.

달과 사자 그리고 개를 비유하는 말의 낙처(落處)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아버지뻘, 어린 것들, 나잇살이나 먹고, 꼰대들, 싸가지, 무뢰한, 거친 말,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대들면 안 된다, 인간적 모멸감, 인종차별 등 말꼬리를 잡는 것이 걱정스럽다.

선문(禪門)에는 ‘진정성이 담긴 말은 다소 표현이 거칠어도 별스럽다 말라(心眞莫怪言?)’라는 표현도 있다. 속담에도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든지 미워지거나 밉게 보이기 시작하면 사사건건 밉게만 보일 뿐이다.

걸렸다 하면 꼬투리를 잡는다. 줄을 쳐놓은 거미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망나니의 칼춤을 멈추지 않는다. 손맛 보는 낚시질에서 한 번의 입질에 경망스럽게 낚아채지 말고, 두세 번의 입질에 느긋하게 건져 올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상대방도 처지를 생각해볼 여유를 주어야 하며, 그때 가서 진실을 확인해도 늦지 않다. 모두 여유가 있고 점잖았으면 좋겠다.

‘인재를 다른 시대에서 구하지 말라(才不待於異代)’는 말이 있다. 즉, 능력자를 다른 지역에서 구하지 말고 지역과 자기 곁을 살펴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집 며느리와 옆집 며느리의 인식도 달라야 한다. 지역 인재와 내 며느리는 오랫동안 마부작침(磨斧作針=‘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라는 옛이야기)의 마음으로 하나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지난 17일 황곡(=큰고니) 여섯 마리가 태화강 사군탄 지역에서 올해 처음으로 관찰됐다. 어른 새 두 마리와 어린 새 네 마리였다. 큰고니 가족은 잠시 머물다가 떠났다.

필자는 백봉(오골계 품종) 한 쌍을 5년째 사육하고 있다. ‘기상에 따른 첫울음 변화’를 관찰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닭은 길들인 가금으로 인류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만, 야생으로 사는 황곡은 겨울철 탐조 때 감탄 소리의 대상에 그칠 뿐이다.

지난 19일에는 범서읍 망성리 무학산 상공에서 선회하는 독수리 두 마리가 관찰됐다. 사흘 뒤인 22일에는 8마리가 관찰됐다. 멀리서 울산을 찾는 떼까마귀와 백로, 독수리와 황곡과 같은 철새들도 그 나름의 쓰임새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항상 곁에서 함께하는 텃새인 참새의 전문적 가치는 모르는 것 같다. 참새 나름의 가치를 확인하여 그 쓰임새의 폭을 한층 더 넓히려는 안목을 지녔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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