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덕의 역사칼럼]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조선과 한국을 500년 고생시켰다 ⑥
[배종덕의 역사칼럼]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조선과 한국을 500년 고생시켰다 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1.23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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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한 뒤 모리 가문은 은광을 히데요시에게 헌납한다. 이때부터 이와미 은광(石見銀山)은 조선 침략에 쓰일 막대한 군자금을 본격적으로 충당하게 된다.

조선 조정이 통신사를 파견했을 때 히데요시는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에게 은 400냥씩을 선물로 주었고, 서장관과 역관 이하 수행원 역시 등급에 따라 차이를 두어 은을 선물했다. 당시 이와미 은광의 생산량은 세계 1위 수준이었고, 이는 조선에서 넘겨받은 ‘회취법’(=금, 은, 납의 합금에서 금과 은을 분리해내는 방법.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 덕분이었다.

당시 이와미 은광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볼리비아의 포토시 은광과 더불어 세계적인 은(銀) 산지로 알려져 있었다. 17세기 초, 일본 전체의 은 생산량은 전 세계의 1/3을 차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전국시대가 끝난 도요토미 정권 치하의 일본이 1592년 조선을 침략한다. 이때부터 2차 정유재란 기간인 1598년까지 이어진 전쟁이 바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다. 이 무렵 조선에서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 단천연은법(端川煉銀法=15세기 말 함경도 단천에서 납 광석을 써서 은을 제련·분리하던 조선 특유의 연은분리법)은 몰래 일본으로 넘어가 조선 침략에 쓰일 군자금의 밑천이 된다. 왜군의 조총 앞에서 활과 창으로 대적하던 조선의 군사들은 그들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이 임진왜란으로 얼마나 많은 조선 사람들이 아무 죄도 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던가! 이들 왜군은 참으로 잔인하게도 조선 사람을 죽인 뒤 귀를 베어가고, 코도 베어갔다. 히데요시는 왜군에게 조선군과 백성들을 보는 대로 사살해서 그 수급(首級)을 모아오라고 명령했고, 수급이 너무 무거워 운반이 어려워지자 대신 코를 잘라오라고 명령한다.

그는 병사가 아니더라도 노인과 여자, 아이를 가리지 않고 코를 베어서 보내면 그 숫자에 따라 영지를 하사하겠다며 전의를 부추긴다. 이에 따라 왜군은 조선군과 백성들을 죽인 뒤 대부분은 코를 베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전북 남원시에는 ‘만인의총(萬人義塚)’이라는 합장묘가 있다. 당시 남원지역에서 왜군에게 학살된 민·관·군의 수는 거의 1만 명에 달했고, 대부분 목이나 코가 없는 시신 상태로 합장되었다고 한다.

일본군 장수들이 코를 베어 일본에 보내면 히데요시는 영수증을 써주고는 코를 소금에 절였고, 일일이 그 숫자를 센 뒤 휘하 장수들에게 감사장을 써 보냈다. 히데요시는 소금에 절인 조선 사람들의 코를 수레에 싣고 교토 시내를 한 바퀴 돈 뒤에 한 곳에다 묻었다. 이 코무덤은 지금 일본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의 히데요시를 받드는 도요쿠니 신사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공원에 방치돼 있다. (⑦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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