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태화시장
-293-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태화시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1.22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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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으로 본사를 옮기면서 ‘울산 총각’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6년 반이 지났다. 그간의 울산 생활이 만족스러웠는지, 가족이 있는 수도권 집에 올라갈 때보다 울산으로 내려올 때가 훨씬 발걸음이 가볍고 콧노래도 절로 난다. 처음 울산에 내려와서 약간의 문화충격을 겪기도 했으나 금방 적응하였을 뿐 아니라 울산 토박이보다 울산을 더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이해가 안 가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건 다름 아닌 ‘5일장 전통시장’이었다.

필자는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강원도 산간지역에서 보내다 초등학교 때부터 도청소재지인 춘천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그런데 모두가 산골로 알고 있는 강원도에서도 5일장은 정선이나 영월 같은 군 이하의 읍면에서나 볼 수 있고, 인구가 10여만 명인 춘천에는 상설시장 말고는 5일장과 같은 옛날 방식의 시장은 없다. 그런데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 산업도시 울산 도심에서 전통 재래시장이 5일 간격으로 열린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쩌다 태화교를 건너 혁신도시로 가는 날은 희한하게도 장날이었다. 길이 막히면 “누가 시골 아니랄까 봐 시골티를 내네!” 하며 괜한 짜증을 내기도 했다.

본사가 중구 혁신도시에 있음에도 숙소는 남구 아니면 심지어 해운대에 있었다. 회사 가까운 중구로 숙소를 옮긴 게 작년 2월이니 아직 2년이 안 된다. 숙소가 태화시장 바로 옆에 있다 보니, 좋든 싫든 태화시장을 가게 된다. 처음엔 장날을 피해 한적한 날에 양식을 구하거나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먹고 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장날, 그것도 사람이 가장 붐비는 오후 피크시간에 갔다. 비릿한 생선 냄새와 시끌벅적한 장터 소음 속에서 불현듯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학창시절을 보낸 춘천은 상설시장이었는데 규모도 꽤 크고 늘 북적였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두 번 장을 보러 가셨는데, 문제는 시장까지 거리가 꽤 멀 뿐 아니라 고개도 하나 넘어야 했다. 늘 양손에 가득 담은 장바구니를 들고 힘들게 다녀오는 어머니가 무척 안쓰러웠다. 그래서 초등학교 4, 5학년 때부터는 일부러 어머니를 따라 고개 넘어 시장엘 다녔다. 처음엔 “이럴 시간에 공부를 더 해야지!” 하면서도 은근히 반색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엔 둘이 장바구니를 나누어 들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날은 “아들만 3형제라 참 팍팍했는데, 네가 딸 역할을 톡톡히 하는구나!”라며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정년퇴임하고 말년을 ‘김삿갓 생가터’ 인근의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란 곳에서 10여 년을 사셨는데, 영월읍 내의 시장까지는 20km가 넘었다. 그때 필자는 수도권에서 결혼 후 직장생활을 하던 때라 부모님 계신 곳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내려갔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들이 내려올 때를 기다렸다가 새벽에 읍내 시장에 가서 한달치 식료품과 일용품을 봉고차에 가득 싣고 오곤 했다. 오가는 차 안에서 그간 못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쏠쏠했다.

태화시장에 들어서니 꼬불꼬불 파마한 아주머니들이 모두 어머니 같다. 괜스레 눈물이 핑 돌고 목젖이 뜨거워졌다. 시장 한켠에 우두커니 서서 눈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이내 생선가게와 과일가게를 기웃대다가 술 안주할 편육이랑 강원도식 감자떡을 사 가지고 돌아온다. 이제는 제법 다녀서인지 알아보는 과일가게, 장어구이집, 전집, 그리고 옛날식 통닭집도 있다. 한결같이 인심도 좋고 외지사람이라며 서비스도 더 잘해준다. 지금 사는 숙소의 계약기간이 곧 만기가 된다. 다음 숙소 역시 태화시장 주변에서 찾아볼 요량이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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