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通의 우리술 이야기] 백제를 닮고 싶은 술, 한산 소곡주 ①
[心通의 우리술 이야기] 백제를 닮고 싶은 술, 한산 소곡주 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1.22 2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公無渡河(공무도하=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공경도하=임이 기어이 물을 건너시네)/ 墮河而死(타하이사=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당내공하=이제 임이여 어이할꼬).”

우리나라의 최초의 서정시로 알려진 고조선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이다. 이 노래는 관련 설화와 함께 구전되다가 3세기 후한 최옹이 지은 <금조(琴操)>라는 책에 처음으로 가사가 실려 전해온다. 그 후 진(晉)나라 최표가 지은 <고금주(古今註)>에 실린 내용을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이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소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주된 내용은, 흰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늙은이(백수광부·白首狂夫)가 술병을 들고 강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부인이 말렸으나 듣지 않고 강물에 뛰어들어 죽게 되었고, 이에 부인이 구슬프게 공무도하가를 부르고는 남편의 뒤를 따랐다는 이야기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고조선의 노래가 AD 3세기에 기록으로 남겨졌다는 것은 그만큼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백수광부, 그는 어쩌면 평범한 가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백수광부로 만든 것은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었을까. 남편을 따라 부인이 죽는다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가정이라야 말이 된다. 그러한 피치 못할 상황이 무엇이었을까. 홍수로 불어난 물에 아들이 빠져 죽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아들을 잃은 상심한 마음에 술로 슬픔을 달래다가 정신줄을 놓고 강물에 뛰어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부모가 자녀를 따라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은 공무도하가의 여운과 함께 묘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공무도하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라는 의미도 있지만, 당시 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소중한 자료적 가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지 위지동의전(三國志 魏志東夷傳)에 부여의 영고, 동예의 제천과 같은 국가행사에 술이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공무도하가는 우리나라 술의 역사를 고조선(古朝鮮)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고구려의 술은 꽤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東國李相國集 東明王篇)>을 보면 하늘나라 왕자 해모수(解慕漱)가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내려와 사냥을 즐기다가 미모의 세 여인을 발견하고는 그들에게 술을 취하도록 마시게 한다. 해모수는 그중에서 유화라는 여인을 취하고, 그렇게 해서 주몽이 태어나면서 고구려가 시작된다. 동서고금을 통해 남녀 사이를 이어주는 작업용(?)으로 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라는 술을 놀이문화로 승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경애왕이 연회를 즐기다가 견훤에게 잡혀 죽게 되는 비극으로 포석정은 퇴폐문화의 상징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그러나 포석정은 흐르는 물 위에 잔을 띄워 놀이를 하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펼치던 곳인데 그 자체로 지탄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어느 정치인이 수해가 났을 때 골프를 치다 욕을 먹었다고 해서 골프 자체는 죄가 없는 것과 같다.

신라의 또 다른 술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주령구(酒令具)란 놀이기구이다. 이것은 1975년 경주 월지(안압지) 공사 중 발견된 것으로 정사각형 6면, 정삼각형이 변형된 육각형 8을 합쳐 모두 14면으로 된 주사위다. 각기 다른 다각형으로 구의 형태를 만드는 것도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데 각 밑면의 넓이가 대동소이해서 각 면이 나올 확률이 같다는 점에서 신라인들의 수학적 지식이 놀이문화에까지 적용되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각 면에 새겨진 글자의 내용이다. ‘음진대소(飮盡大笑)’(=술을 다 마시고 크게 웃기), ‘삼잔일거(三盞一去)’(=술 석 잔을 단숨에 마시기), ‘농면공과(弄面孔過)’(=얼굴을 간질여도 꼼짝 않기), ‘중인타비(衆人打鼻)’(=여러 사람이 코를 때리기) 등이 있는데 지금의 MZ세대가 보아도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저녁 모임에 주령구를 챙겨가는 신라인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②로 이어짐

심규명 변호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