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젠 학교 친구들과도 잘 지내야겠어”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젠 학교 친구들과도 잘 지내야겠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1.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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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서 ‘저주’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슷한 요소로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마법’보다도 오히려 비중이 더 크다. 마법이 동심을 자극한다면 저주는 현실을 직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인류를 위협하는 ‘전쟁’이나 ‘환경오염’을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로 풀이했고, 심지어 사람이 점점 나빠지는 것도 저주에 걸렸기 때문으로 봤다. 그의 그러한 태도는 <원령공주>를 거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지나 2004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그 작품을 통해 그 모든 저주의 근본적인 원인을 주인공 하울(키무라 다쿠야)이 걸린 저주로 담아내고자 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부재’였다.

하울은 어렸을 때 이름 모를 들판에서 별똥별을 삼킨 뒤 자신의 심장을 가슴에서 토해낸다. 바로 마음과 몸이 분리되는 저주에 걸려 버린 것. 해서 훗날 그는 마법을 부리는 초절정 꽃미남으로 성장하지만 자신의 심장(극중 불덩이인 ‘카루시파’), 즉 마음은 늘 성(城)에 두고 외출을 했다. 어른이 되면 가진 게 많아지고 그것에 대한 집착이 늘어가는 우리가 마음은 늘 집에 두고 오듯이. 집 밖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냉혹한 전쟁터이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릴 적 순수했던 마음은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결국 마음은 집에 두고 남들에게 보여 지는 겉모습만 잔뜩 신경을 썼던 하울의 저주는 그를 사랑하는 소피(바이쇼 치에코)의 순수한 사랑으로 풀리면서 세상엔 비로소 평화가 찾아든다.

그렇다. 전쟁이든 환경오염이든 우리 어른들이 저지르지, 아이는 아니다. 하지만 그때 그 순수했던 아이는 어른만 되면 마치 저주에 걸린 듯 전쟁과 환경오염을 일삼는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번엔 진짜(?) 은퇴작이라고 밝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전범국가의 소년 마히토(산토키 소마)를 통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싸우면서 살 건지, 아니면 사이좋게 살 건 지를. 그것도 11살의 마히토처럼 한때 다들 순수한 아이였던 당신을 향해.

때는 바야흐로 2차 세계대전의 한 축인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절, 소년 마히토는 미국의 도쿄 대공습으로 엄마를 잃게 된다. 아버지는 전란을 피해 마히토를 데리고 죽은 엄마의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엄마의 동생(마히토의 이모)과 재혼을 하게 된다. 아니, 이미 신혼집을 차린 뒤 마히토는 엄마의 고향인 시골로 내려가게 되고, 그 집에서 정체불명의 왜가리(스다 마사키)를 만나게 된다.

자꾸만 마히토를 자극하는 왜가리. 심지어 그는 사람 말까지 해가며 마히토를 약 올리듯 괴롭혔고, 이에 마히토는 직접 활을 만들어 그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언제나 은유(메타포)를 작품 속에 가득 채워넣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었던 만큼 이번엔 태평양 전쟁을 마히토와 왜가리의 작은 전쟁에 담아낸다. 처음에는 우아하게 등장하는 왜가리의 모습은 점점 코 큰 대머리의 서양인으로 정체가 드러나는데 바로 ‘미국’을 상징한다고 보면 된다. 실제 태평양 전쟁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전에 일본에 대해 원유 공급을 끊었던 미국의 자극이 있었다.

헌데 마히토의 전쟁 상대는 왜가리 뿐만이 아니었다. 과거 이모였다가 이젠 새엄마가 된 나츠코(기무라 요시노)와의 관계도 전쟁이었는데 새엄마에게 못됐게 굴진 않았지만 죽은 친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게다가 전학 온 시골 학교 친구들과도 싸움을 하며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의 성 밖에선 계속 전쟁이 벌어졌던 게 성(집)에 두고 온 마음 때문이었듯 마히토도 마음을 챙기면서 결국 왜가리는 물론 나츠코와도 진정어린 화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결심도 한다. “이젠 학교 친구들과도 잘 지내야겠어”

언제나 큰 일은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 11살 꼬마의 작은 결심이지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지만 아주 커다란 대답인 셈이다. 그리고 마히토의 이 작은 결심을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하마스’도 듣고 어서빨리 하울의 저주에서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2023년 10월 25일 개봉. 러닝타임 124분.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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