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 신사’
‘빈대떡 신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1.13 2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 파리, 영국, 탐지견, 이집트 무덤이란 표현이 연상시키던 외국의 빈대(bug, 壁?, 南京?) 이야기가 최근 한국에서도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라 전국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얼마 전 과학 매체 ‘내셔널지오그래픽’이 파리의 빈대 확산 소식을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빈대가 사람의 잠자리에서 공존하는 것은 먹이가 혈액이기 때문이다. 머리 쪽 바늘 모양의 관을 사람의 피부에 찌르는 과정에 마취제와 혈액 응고를 막는 항응고제가 포함된 단백질이 다량 주입된다. 바로 이 물질이 사람에게 가려움과 발진을 일으키게 한다.

우리나라에는 ‘빈대떡 신사’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밖에서 매를 맞는데/ 왜 맞을까 왜 맞을까 원인은 한 가지 돈이 없어/ 들어갈 땐 폼을 내며 들어가더니/ 나올 적엔 돈이 없어 쩔쩔매다가/ 뒷문으로 도망가다 붙잡히어서…(줄임)…/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빈대떡 신사’ 가사 중)

이 노래의 가사만 놓고 보면 빈대떡이 마치 ‘가난한 사람의 음식’이라는 빈자병(貧者餠)으로 인식될지 모른다. 하지만 ‘빈대’ 혹은 ‘빈대떡’의 어원은 얇고 납작한 모양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빈대 코’, ‘빈대 밤’ 같은 표현도 납작한 모양을 떠올린다.

빈대는 역사적으로 조선 <성종실록>에 등장한다. 기록에 나오는 것은 우리나라가 아닌 유구국(琉球國, 현 일본 오키나와)의 빈대다. 한자로는 냄새나는 곤충이라는 뜻에서 ‘취충(臭?)’이라고 적었다.

필자는 1950년대 농촌에서 유년기를 보낼 때 빈대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자다가 일어나 몇 번이고 등잔불을 켰다. 그 순간마다 여러 마리 빈대가 틈새를 찾아 빠르게 기어들어 갔다. 밤새 켜고 끄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틈새에 숨었다가 불을 끄면 일제히 기어 나와 먹이 활동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불을 켜면 천장에 빈대가 점처럼 붙어있다가 떨어지기까지 했다. 그 시절도 빈대는 사람을 성가시게 했지만 지금 같지 않게 무덤덤할 뿐이었다.

빈대는 사람의 따뜻한 피를 주식으로, 사람의 잠자리를 서식 환경으로 삼는다. 그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침대곤충(bedbug)’이다. 빈대는 주로 밤에 활동하고 벽의 틈새에 산다고 해서 ‘벽충(壁?)’ 또는 ‘벽슬(壁?)’이라고도 부른다.

‘빈대 붙는다’라는 말은 속된 말로 누군가에게 달라붙어 노력 없이 소득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된 폐사지(廢寺址) 이야기에는 대부분 빈대가 빠지지 않는다. 빈대가 수행자를 성가시게 하여 어쩔 수 없이 절을 태우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빈대는 노린재 목, 노린재 아목, 빈대 과에 속하는 곤충이다. 노린재류가 특이한 냄새를 분비하는 것은 천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노린내를 풍기는 것에서 생긴 ‘빈대 씹은 얼굴’이란 문학적 표현도 있다.

빈대 냄새가 나는 ‘빈대풀’이라는 향초(香草)도 있다. 비린내 비슷한 노린내가 나도 불교 수행자는 이를 즐겨 먹는데 바로 ‘고수’라는 식용 풀이다. 혹시 빈대 냄새를 맡고 싶은 분에게는 고수를 한번 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빈대는 성가신 밤의 불청객이다. ‘빈대 미워 집에 불놓는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 ‘집이 타도 빈대 죽으니 좋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와 같은 속담들은 빈대에 대한 미움과 혐오감을 떠올리게 한다. 빈대는 번식력은 강해도 열기에는 약하다.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을 생각한다면 박멸에는 살충제보다 뜨거운 열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