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1.1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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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백하로 가는 길은 온통 옥수수밭이다. 사료용과 식용이 있는데 휴게소에서 사 먹은 노란색의 찰옥수수가 참 맛있다. 용정이라는 마을에서 쉬었다 가는데 소설 ‘토지’에도 나오는 곳이다. 서희와 길상이가 걸었던 동네로 ‘길서상회’가 어딘가 있을 듯하다. 고속도로 옆으로는 황금 들녘이 그림 같다. 멀리 ‘선구자’ 노래에 나오는 ‘일송정’이 희미하게 보였다.

천지를 못 보는 사람이 ’천지 빼가리‘라서 ‘천지’라고 한다는 가이드의 우스갯소리에 못 볼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중국에서 북파, 서파, 남파를 통해 갈 수 있다. 여기서 ‘파’는 비탈, 언덕을 의미한다. 천지는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다. 그중 압록강에서 출발하는 남파는 북한과 더 인접해 있는데 가기가 어렵다.

중국에서 장백산이라고 불리는 백두산은 하얀 머리가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산머리가 1년 중 8개월이나 눈으로 덮여 있는 곳이다. 백두산은 활화산이라 폭발설이 한 번씩 거론되곤 하지만, 아직 전조증상이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높이는 2천744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가방, 여권, 입장권 검사까지 줄을 서고 뛰고 해서 정신없이 떠밀려 셔틀버스를 탔다. 전날 눈이 왔다고 하더니 날씨가 거의 영하에 가까웠다. 두꺼운 롱패딩을 빌려주는 곳도 있었다. 해가 눈부시게 빛나는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9월인데 자작나무와 활엽수가 예쁘게 물들어 있었다. 날씨가 좋아 안도했지만, 천지 날씨는 누구도 장담 못 한다고 했다. 하루에 백 두 번씩 변화무쌍하게 바뀌어 백두산이라는 말도 있고 백 번 올라가면 두 번을 본다는 말도 있다나.

서파로 천지를 보려면 1천442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오른 계단의 수가 십 단위로 적혀 있다. 다른 코스보다는 조금 힘든 곳이라 할 수 있다. 서파에만 있는 특이한 것이 있는데, 사람이 가마를 앞뒤에서 들고 천지까지 올라가는 인력거가 있다. 그냥 걸어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 길을, 가마꾼들이 관광객을 태우고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린아이가 탄 가마가 있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중에 뚱뚱한 남자가 탄 가마를 보는 순간 ‘헉’ 소리가 나왔다. 팁이 더 비싸다.

평소에 등산을 즐겨서 가뿐하게 30분 정도 올라가니 먼저 조·중 국경 경계선인 37호가 나왔다. 백두산은 현재 천지를 경계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을 이루고 있다. 1962년 10월 12일에 평양에서 저우언라이와 김일성이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을 체결하여 백두산과 천지를 분할했다. 이 조약에 따라 백두산의 북서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45.5%, 남동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54.5%가 속한다. 억울한 생각이 든다.

중국은 백두산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올리려고 했고, 장백산을 ‘중화 10대 명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중국 지진국은 지난 1996년부터 백두산 천지 지역에서 화산 측정과 관련 연구도 해오고 있다. 분단 후 한국인이 백두산을 갈 수 있게 된 것도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게 된 1990년대 초반부터 중국 땅을 통해서다. 예전의 우리 땅인데 많이 둘러 와 씁쓸했다.

천지는 망망대해 같고 푸르다 못해 검푸르고 적요했다. 해발고도 2천500m이고 천지로부터 1천300m 위에서 내려봤다. 백두산의 최고봉은 장군봉을 위시해 16개 봉우리가 감싸고 하늘빛도 물빛도 너무나 푸르게 빛나면서 마치 은혜를 베푸는 것 같았다. ‘만세’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위대하고 경이로움에 넋을 잃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찍이 한민족의 발상지로, 또 개국의 터전으로 숭배되어왔던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경계비와 천지 비는 중국 사람 차지였다. 줄을 서도 다른 일행을 불러서 또 찍고 끝날 줄 몰랐다. 천지를 여섯 번이나 왔다는 사람이 소주를 꺼내 뿌렸다. 해마다 오는 이유는 왔다 가면 일이 잘 풀린다고 했다. 저절로 천지신명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천지를 실컷 봐서 더없이 뿌듯하고 행복하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내일 북파의 천지를 기대하며 ….

김윤경 작가·여행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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