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권리행사는 타인의 권리도 존중하면서…
나의 권리행사는 타인의 권리도 존중하면서…
  • 이상길
  • 승인 2023.11.09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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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과 학생인권의 조화, 해외에서 길을 찾다
▶ 학생인권조례와 세계인권선언
▶ 캐나다 - 마니토바주의 지속성 개발교육
▶ 영국 - 국가수준 교육단계에 따른 교육과정 내에서의 세계시민교육
▶ 핀란드 - 세계시민교육 2010

개인주의 넘어 타인 피해 주는 이기주의로 변한 현실
‘학생 인권’개념, 한국에만 존재… ‘교권’과 대립각
“해외에선 세계시민교육 통해 조화 추구 주목해야”
지난 달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이초 진상규명 및 아동복지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지난 달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이초 진상규명 및 아동복지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으로 표면화된 우리나라 교육계의 심각한 교권 추락 실태의 근본 원인과 대책을 찾으려면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는 오랜 유교적 가르침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군사정권의 강력한 권위와 맞물려 한동안 교사는 교실 안팎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러다 민주화 운동과 함께 각계각층에서 인권 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학생 인권도 성장하게 됐고, 반대급부로 교권은 점점 입지가 줄어들게 됐다. 다시 말해 학생 인권의 성장은 절대적인 교권 시대에 대한 반작용인 셈.

하지만 관념주의 철학자인 헤겔에 따르면 이 역시 ‘정-반-합(正-反-合)’이라는 역사발전 3단계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우리나라도 이제 교권과 학생 인권 간에 ‘합(合)’을 찾아야 할 때다.

그 합(合)에 대해 다들 ‘조화’나 ‘균형’을 이야기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그걸 찾을 것이냐는 것. 이에 본보는 현재 추진 중인 각종 법이나 제도 정비가 단순 미봉책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학생인권지원센터를 운영 중인 울산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의 도움을 받아 해외로 눈을 돌려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 교권과 학생 인권의 현주소

지난달 언론보도 한켠을 장식했던 나름 시끌벅적했던 사건이 하나 있다.

이른바 ‘고속버스 민폐 영상 확산’이라는 제목의 보도였는데 SNS에 올라온 한 영상을 토대로 보도가 이뤄졌다. 해당 영상의 내용은 이러했다.

고속버스 안에서 젊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한 승객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등받이를 뒤로 끝까지 젖히는 바람에 뒤에 앉은 나이 지긋한 승객이 불편을 겪게 됐다.

이에 뒷자리 승객은 불편을 호소하게 됐고, 결국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나섰다. 그는 젊은 여성에게 뒷자리 승객이 불편하니 등받이를 조금만 올려달라고 했지만 여성은 운전기사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못하겠어요. 뒤에 사람이 불편하다고 제가 불편할 순 없죠. 애초에 이만큼 숙이라고 만든 건데 뭐가 문제죠?”

고속버스 한켠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이지만 이 사건은 지금 우리 사회의 정서가 흘러가는 방향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다르겠지만 앞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이 주장하듯 ‘이만큼 숙이라고 만든’ 개인주의가 도를 넘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주의로 변질되어 가는 현실이 그것이다.

작금의 교권과 학생 인권 간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학생 인권의 성장으로 학생들은 자신들의 등받이를 뒤로 끝까지 편 상태이고, 뒤에 앉아 입지가 점점 좁아진 교사들은 불편을 넘어 고통까지 겪고 있는 것. 이런 상황이 지난 여름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의 근본 원인으로 보는 것에 이견을 제시할 이는 아마 없을 듯 하다.

결국 학생들이 알아서 뒤에 앉은 교사들을 배려해 등받이를 앞으로 조금 세워주면 제일 좋겠지만 고속버스 앞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이 그렇듯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서 당장 그런 의식의 성장을 이끌어 내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동시에 근본적인 해결책이기도 해 이는 분명 장기적인 과제로 봐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에 조언을 구한 결과, 외국에선 오래전부터 교권과 학생 인권의 관계를 큰 테두리 안에서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조화와 균형을 이뤄내고 있었다.

◇세계인권선언과 세계 시민으로서의 교사와 학생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 있는데 교권과 뚝 떼어낸 ‘학생 인권’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는 게 인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앞서 오랜 유교 전통과 군사정권 하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누렸던 교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학생 인권’이라는 개념이 태동하게 됐고, 그것이 제도로 실현된 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소지품 검사 금지, 휴대폰 사용 자유 등 사생활의 자유 보장’ 등의 내용으로 이뤄진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10년 10월 경기도 교육청을 시작으로 2011년 광주, 2012년 서울, 2013년 전라북도에 이어 2020년에는 충청남도에서도 제정됐다. 충남도에 앞서 2018년엔 경상남도교육청도 제정을 시도했지만 기독교계를 주축으로 하는 극심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었다.

울산에서도 고 노옥희 전 교육감 시절 조례 제정 시도가 있었지만 역시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다만 울산의 경우 일부 상급학교에서 학교 규칙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학생인권조례의 내용들이 일부 포함돼 운영되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울산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없지만 전국적으로 ‘학생 인권’이라는 개념이 교육계에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울산 학생들의 인권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덩달아 성장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교권’과 ‘학생 인권’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며 흘러오는 동안 외국에선 일찌감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뤄왔다는 점에 이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시민’이란 이 지구촌에서 개별 국가의 국민으로서가 아니라 상호의존성이 높아가는 지구촌 전체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을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세계적 시각으로 지구촌의 문제를 인식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으로 이는 지난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열린 제3회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을 토대로 한다.

다만 세계인권선언이 처음 만들어졌던 때는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점이어서 당시 전 세계에 만연해 있던 인권침해 사태에 대한 인류의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가 전반적으로 강하다.

따라서 현 시점에 총 30개 조문으로 이뤄진 세계인권선언에서 ‘세계시민교육’을 통한 교권과 학생인권의 조화를 위해 우리가 참고할 만한 조문은 29조에 집중돼 있다.

그 중에서 특히 29조 2항의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도 마땅히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대목에서 답을 찾을 수가 있다.

그러니까 같은 ‘세계시민’이라는 의식의 성장을 통해 교사와 학생이라는 차이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그러한 의식의 성장이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도 자연스레 뿌리를 내리게 되면 뒤에 앉은 교사들의 불편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좌석 등받이를 뒤로 젖혔던 학생들도 뒷사람을 배려해 스스로 등받이를 세우지 않을까. 이에 다음 편부터는 우리나라에선 아직 생소한 해외의 세계시민교육 현장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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