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땅을 살찌우는 인간승리의‘위대한 유산’
척박한 땅을 살찌우는 인간승리의‘위대한 유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8.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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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부터 타클라마칸까지 지하수로 5000km
2000년전 대역사 중국 ‘3대 불사의’로 불려

물 없는 인간의 삶이 있을 수 있으며 문화가 존재 할 수 있을까? 거듭 단언하건데 분명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일 년 내도록 비 몇 방울 내리지 않는 건조한 사막 한 가운데서 번성했던 실크로드의 고대 도시들과 문화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답은 오아시스라는 통칭되는 곳의 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솟아오르는 샘 수준의 물로는 그 많은 사람들이 삶을 영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으로 오아시스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카레즈(Kareze)라는 물길이다.

한자로는 감아정(坎兒井), 중국식 발음으로 칸얼징이라는 지하수로(地下水路)인 카레즈는 사시사철 만년설(萬年雪)로 덮인 천산산맥의 수원(水源)을 이용한 것이다. 만들기 손쉬운 지상수로(地上水路)를 마다하고 굳이 힘든 지하수로로 만든 까닭은 연간 강수량이 우리나라 장마철 폭우가 내릴 때 단 몇 분 동안 내리는 비의 양보다 적은 16mm이하에 불과한데 비해 증발량은 3,000mm가 넘는다. 이 지방의 건조한 기후 때문이다. 지상으로 수로를 만들면 흘러 내려오는 중간에서 모두 증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천산산맥의 수원(水源)으로 부터 중간 중간 몇 십 미터 간격으로 수혈(竪穴)인 수직우물 수정(垂井)을 파고 우물과 우물 사이를 굴을 뚫어 이어서 지하물길인 암거(暗渠)를 만들었다. 이 우물은 물을 길어 올리는 역할도 하지만 굴을 구간별로 나누어 뚫기 쉽게 함과 동시에 완공 후 유지 보수를 용이 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 다다르면 지상물길인 명거(明渠)를 통해 물을 흘려 보내고 마지막으로 노패라는 이름의 저수조(貯水槽)에 물을 저장하여 사용하게 된다. 카레즈의 일반적인 규모는 깊이가 낮은 것은 지하 1.5m 깊은 것은 지하 70m에 이르는데 상류로 올라갈수록 높아지는 고도만큼 더 깊이 파야 하기 때문이다. 폭은 0.6m∼0.7m, 하나의 길이는 짧은 것은 3∼4km, 긴 것은 50km를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런 구조와 규모를 가진 카레즈는 투루판과 부근의 하미(Hami : 哈密)에 있는 총 길이만 해도 1,500km에 이르고, 타클라마칸사막 주변의 것을 모두 합하면 전체 길이가 5,000km에 이른다.

이처럼 카레즈는 공사의 어려움과 기술적인 문제, 그리고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주로 지주(地主)들이 만들어 소유를 하였고 지금은 인민공사가 관리를 하고 있다. 이렇게 끌어 온 물은 주변 3억㎡, 우리 식으로는 대략 9천백만 평이 넘는 지역에 공급되고 있다. 이처럼 카레즈의 물은 이제는 더 이상 오아시스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그 세(勢)가 너무 팽창해버린 오늘날도 주변 도시들과 마을에서 필요한 생활용수의 30%이상을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생명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카레즈를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투루판에서는 하나의 카레즈 일부 구간을 개방하여 박물관을 만들어 놓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명거(明渠)-밝은 곳을 흐르는 물길이라는 뜻-에 거의 가까이 온 카레즈의 높이에 맞춰 지면보다 약간 낮은 곳에 만들어져 있다.

내부에는 카레즈의 간단한 설명과 더불어 모형이 만들어져 있고 100m 남짓 개방된 물길 중간 중간에 카레즈를 건설하는 실물크기 모형을 만들어 두어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여러 종류의 측량도구와 굴착장비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과연 그 당시 이런 정도의 장비를 사용하였을까 싶을 정도로 요즘의 장비와 유사한 것도 있다. 땅속에서 드러누운 자세로 흙을 파고 파낸 흙을 운반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이 대역사(大役事)에 동원된 인부들의 인고(忍苦)와 희생이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또 물길 곳곳에는 당시 주변 지역민들의 생활상을 조성(造成)해 두었다.

박물관을 만들어 개방하고 있는 카레즈는 현지어로는 아이스카르 하지 (Ayskar haji), 중국어로는 친쳉치멘(신성서문(新城西門)이라 부르는 것이다. 삼, 사백 년 전에 처음 만들어져서 오랜 기간 동안의 힘든 작업 끝에 오늘날의 규모가 되었다고 한다. 길이는 10km가 넘는 이 카레즈의 물은 주변의 수천 개 농장과 7개 마을의 주민들에게 관개수(灌漑水)와 생활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사시사철 흐르는 이 카레즈의 물은 차고 깨끗해서 지역민들의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지금까지 기원전 6∼5세기부터 만들기 시작하였다는 카레즈를 간단하게 알아보았지만 변변한 굴착도구가 없었던 고대(古代)에 이 엄청난 토목공사를 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2,0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가지는 카레즈는 만리장성(萬里長城)과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와 더불어 중국의 3대 불가사의로 일컬어지고 있다.

잠시 흐르는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수 백리 땅속을 흘러 온 눈 녹은 물치고는 그다지 차갑지는 않았다. 조금 떠 먹어보니 물맛 역시 그다지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카레즈를 위그루지역을 강제합병, 통치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고유의 것인 양 말하고 있지만 이란에서는 카나트(Qanat)라 부르며 자기들이 원조라고 한단다. 또한 시리아와 모로코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에도 유사한 설비가 있는데 포가라(Foggara)라고 부르고 있고 신강위그루자치구의 인접국인 아프가니스탄에도 같은 설비가 있는데 역시 카레즈(Kareze)라고 부른다.

부질없어 보이는 원조 싸움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로서는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지만 지금도 이것 없는 사막에서의 삶은 꿈도 꿀 수 없는 생명줄이 바로 카레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지방에 살던 고대인들이 물을 구하기 위한 경탄할 만한 발명품이자 척박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이 절절히 배어 있는 인간승리의 위대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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