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내 고독을 아는 차’를 떠나보내며
-290- ‘내 고독을 아는 차’를 떠나보내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1.0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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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받은 ‘대지’의 작가 펄벅이 1960년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는 한국의 시골에서 농사일을 마치고 소달구지를 끌며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농부는 지게에 농기구를 잔뜩 진 채 고단한 몸을 이끌고 귀가하는 중이었다. 펄벅이 물었다. “왜 당신은 비어 있는 달구지를 타고 가지 않습니까?” 농부가 대답했다. “오늘 우리 소가 힘들게 일을 많이 해서 고생했으니까, 제가 짐을 나눠 지고 갑니다.”

펄벅은 훗날 이 광경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회상한다. 서양의 농부라면 당연히 빈 달구지에 짐을 가득 싣고 자신도 올라타 편안하게 갔을 텐데, 한국의 농부는 동물에게도 깊은 공감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평가했다.

최근 18년이 넘도록 내 몸을 실어나르던 업무용 SUV 차를 폐차했다. 45만km를 달렸고,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쇠락했다. 내가 29살이 되던 해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구입한 차다. 그 차는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부터 고단한 몸을 이끌고 귀가하는 시간까지 줄곧 함께했다. 거래처로 달려가는 초겨울날, 이슬이 가득 맺힌 보닛을 어루만지며, “오늘도 행복하자!”라고 속삭였다. 간혹 여유가 생겨 동해의 푸른 바다를 달리며 쉼표를 찍을 때, 그 차는 창문 너머로 몰려오는 해풍을 그득하게 담으며 묵묵히 제 갈 길을 달려갔다.

사업 성과를 거둬 기쁨의 환호를 지를 때도, 어려움에 부닥쳐 깊은 고민에 빠질 때도 나는 그 차 안에 있었다. 거래처를 오가는 차 안에서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와 구상을 많이 했다. 그러니 그 차는 내 생(生)의 상당 부분을 공유했고, 나의 기쁨과 아픔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 그 차에게 ‘내 고독을 아는 차’라는 고상한 닉네임을 붙여줬다.

그런 차를 떠나보냈다. 서운함을 넘어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이 몰려왔다. 분신이나 다름없는 차를 곁에서 떠나보내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반려동물이나 애장품이 자신의 곁을 떠날 때 깊은 상실감을 느끼지만, 나도 그들이 느끼는 감정보다 더한 슬픔을 느꼈다. 자동차를 소모품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나의 이런 감정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폐차장을 나서면서 18년을 동고동락한 나의 차에게 한참을 인사했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있다. 그 대상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위로를 받거나 힘을 얻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 차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아마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함께했고, 지금 어느 정도의 기반을 잡을 때까지 묵묵하게 힘을 보태준 존재였기 때문이다. 내게 머무는 동안 큰 고장 없이 튼튼한 골격으로 나를 떠받쳐 줬다.

얼마 전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아이가 차를 구입했다. 현대차 ‘코나’다. 딸아이는 내게 “엄마, 코나는 나랑 고향이 같아요.”라고 말한다. 세계의 수많은 차가 도로를 누비는 미국에서, 자신이 태어난 울산에서 생산된 자동차를 사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이는 유학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그 차와 함께할 것이다. 아이도 나와 같은 애정을 그 차에 쏟을지 모른다. 이국 생활의 외로움과 성취를 그 차와 함께 누릴 것이다.

고단한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일소의 잔등에 티끌 하나라도 얹히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심성을 가진 우리 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다. 나와 인연을 맺은 것에 대해 그것이 무엇이라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펄벅이 말한 “보석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고상한 사람”으로 살아가리라 믿는다.

초금향 떡만드는앙드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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