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니 장독 깬다’에 대하여
‘노니 장독 깬다’에 대하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0.3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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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을 만났다. 반가움에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니 장독 깬다’고 말했다. 도리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장독을 깬다니”. 그가 말했다. “나도 몰라요, 노는 사람들이 자기의 근황을 그렇게 말하던데요….”

원인과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것을 경계하며 함부로 사용하는 속담, ‘누가 죽은 줄도 알지 못하고 밤새 곡한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내친김에 경상도 사람들의 ‘노니 장독 깬다’는 말의 본질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 속담의 뜻풀이는 대부분 ‘노는 것은 안 좋으니 무엇이라도 하라’는 쪽이 우세하다. 다시 말해, ‘노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라, 그것이 비록 장독을 깨는 것일망정.’이라는 해석이다. 과연 속담의 의미가 그럴까?

먼저 같은 맥락의 ‘노니 염불한다’, ‘노니 멸치 똥 깐다’ 등의 사례를 찾았다. 여기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노니’는 ‘노느니’를 줄인 말이다. 전체적인 맥락은 입과 손을 놀리지 말고 염불을 하든 멸치 똥을 까든 무언가 하라고 권장하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니 장독 깬다’는 속담의 선행 현상사례를 통해 본질을 찾고자 한다.

① 거절할 수 없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노니 장독 깬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② 날씨가 따뜻하고 좀이 쑤셔서 주말농장에 왔다가 ‘노니 장독 깬다’고 한그루 더 잡았다. ③ 경상도 말에 ‘노니 장독 깬다’는 말이 있다. 멍하게 놀지 말고 뭐라도 하라는 얘기다. ④ ‘노니 장독 깬다’고, 텃밭 주변에 소량으로 이것저것 다양하게 심는 중이다. ⑤ 경상도 사투리로 ‘노니 장독 깬다’는 말의 정확한 유래는 모르겠지만, 노는 것은 안 좋으니 놀려거든 차라리 그 시간에 장독이나 깨라는 의미다.

이들 사례의 공통적 표현은 ‘장독을 깨뜨린다’이다. 먼저 ‘노니 장독 깬다’는 속담을 풀이하려면, 장독의 중요성과 용도를 알아야 한다. 장독은 된장, 간장, 고추장 등 장류를 보관하는 용기다. 식생활에서 중요한 장독을 깬다는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장독대는 북쪽 공간에 마련하며, 맑은 날은 수시로 뚜껑을 여닫는다.

이러한 공간의 선택과 행동은 장맛을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햇볕을 쫴 발효를 도와주고 곰팡이의 생성을 억제해서 건강한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민속에서 장독과 장독대는 청결을 유지하며, 금줄을 쳐서 부정한 기운의 접근을 막는 곳이다. 어릴 때 혹 돌멩이를 잘못 던져 장독을 깨트리면 오래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장독을 깨뜨린다는 것은 망나니가 아니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다음은 장독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살펴본다. 장독대는 여러 가지 장독을 모아두는 장소다. 특히 장류의 청결과 저장을 위해서는 바람이 자고 볕이 좋은 맑은 날에 세척과 함께 뚜껑을 열어 햇볕을 쬐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때 장독 뚜껑을 열어 한곳에 모아두는 것을 ‘괸다’고 말한다. 또, 절간에서 공양물을 쌓아 올리는 것을 ‘굄새’라고 부른다.

울산에서는 ‘괴다’ ‘괸다’를 사투리로 ‘개다’라고 말한다. 속담은 함축·축약된 문장이다. ‘노니 장독 괸다’ 역시 ‘노니 장독 개다’이자 ‘노는 (손에) 장독(뚜껑)을 괸다(여닫는다)’는 뜻일 것이다. 결국 ‘깨다’는 ‘괴다’의 센소리이며, ‘괴다=개다(울산 방언)→깨다’와 같은 소리 변화가 의미 변화로 이어졌다고 본다. 속담의 특징인 ‘줄여서 간단하게 전하려다’ 보니 바른 전달에 다소 착오가 생긴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사례는 속담 ‘울며 개 잡아먹기(울며 겨자 먹기)’와 비슷하다 하겠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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