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을의 전설’ 가을, 상실, 그리고 트리스탄의 고독
영화 ‘가을의 전설’ 가을, 상실, 그리고 트리스탄의 고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0.26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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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의 풍경이 문득 예전 같지 않을 때 난 가을을 느낀다. 지난 여름 그토록 뜨거웠는데 갑자기 차창 밖의 풍경이 문득 예전 같지 않을 때 난 가을을 느낀다. 지난 여름 그토록 뜨거웠는데 갑자기 서늘해지는 냉정함이란. 그렇다. 가을은 상실의 계절이다. 짙은 녹음(綠陰)이 적갈색의 시체, 아니 낙엽으로 변해 이내 지상으로 추락하는 만류인력의 법칙은 차라리 상실의 법칙이지 않을까. 그 여름, 그토록 집착했던 나뭇가지를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중력(重力)을 탓하며 지상에 추락한 그때 그 나뭇잎들이 말한다. “어차피 정해진 운명이겠지요”. 하여 몰락의 전설은 어느새 ‘가을의 전설’로 남는다.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주인공 트리스탄(브레드 피트)이 말한다. “뜨거운 심장을 손에 쥘 때 그 영혼은 자유가 된다”. 그가 심장을 손에 쥘 수밖에 없었던 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막내 사무엘(헨리 토마스)이 전사했기 때문. 미국 몬태나주에 살면서 굳이 외면해도 될 전쟁이었지만 정의감이 투철했던 막내는 유럽의 고통을 지켜만 볼 수 없다며 두 형들까지 이끌고 전선으로 갔다가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막내의 주검을 껴안고 울다 이내 분노에 휩싸인 트리스탄, 홀로 적진에 침투해 적들의 심장까지 모조리 챙겨 부대로 복귀한다. 그렇게 트리스탄의 거친 영혼은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동시에 상실의 가을에 영원히 갇힌다.

나뭇가지의 사랑. 떨어지는 낙엽도 낙엽이지만 그걸 지켜보면서 앙상해져 가는 나뭇가지는 혹여 낙엽보다 더 괴롭지 않았을까. 방랑을 시작하는 트리스탄의 뒷모습을 처마 끝에서 바라보는 여인의 슬픈 눈망울이 가을 하늘로 번지고 번지면 광활한 대지는 공허함으로 가득 찬다.

죽이고 죽여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애초에 막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트리스탄의 고독은 더욱 미쳐 날뛰고, 사랑마저 집어삼키며 점점 전설이 되어간다. 허나 그때도 청량한 하늘을 품은 상실의 가을은 절경을 뽐낸다. 다만 아침 햇살에 찰랑이는 은갈색의 수면은 여전히 비수처럼 날카롭다.

그런 가을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는 트리스탄. 인디언 소녀의 수줍은 미소 앞에 마침내 오랜 방랑을 접는다. 그랬다. 폭풍우처럼 거친 사내였지만 그는 카우보이가 아닌 ‘인디언’이었다. 아마도 인디언 학살이 싫어 일찍이 군복을 벗고 대자연의 품에 안긴 아버지 러드로우 대령(안소니 홉킨스)의 피를 물려받아서겠지. 아버지 역시 세 아들 가운데 트리스탄을 가장 아꼈다.

하지만 그런 만큼 형인 알프레드(에이단 퀸)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출세를 꿈꾸며 도시로 나간 형은 한때 트리스탄이 사랑했고, 또 그를 몹시 사랑했던 여인과 부부가 됐다. 운명의 장난이란 이리도 흔하다. 하긴, 지난 여름 시원한 그늘이 되어줬던 빌딩숲이 혹독한 추위로 바뀌는 것도 언제나 시간문제니까. 그래도 트리스탄은 괜찮았다. 오랜 방랑 끝에 그에게도 어깨에 목말을 태운 자신의 사랑스런 아이와 아내가 있었기 때문. 상실의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다.

허나 가을 다음엔 혹독한 겨울. 이제야 겨우 가을의 저주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밀주(미국의 금주법 시대 몰래 만들어진 술) 단속을 위해 보안관이 절벽을 향해 쏜 총알이 운명처럼 튕겨 아내의 살을 파고들 줄이야. 막내가 눈을 감을 때처럼 분노한 트리스탄은 다시 야수가 되어 적의 심장을 손에 움켜쥐고 만다. 이미 다 떨어진 줄 알았는데. 상실감에 젖어 슬피 우는 긴 나뭇가지에는 아직도 떨어질 낙엽이 남았던 걸까.

하지만 그것마저 끝이 아니었다. 보안관의 심장을 움켜진 죄로 감옥에 갇힌 트리스탄을 면회한 여인은 자신이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는 걸 깨닫고는 남편을 뒤로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트리스탄이 사랑했던 사람은 그렇게 모두 그를 떠났다.

드디어 맨몸이 된 앙상한 나뭇가지. 달 밝은 밤에 그 나뭇가지는 술에 취해 조지훈님의 시(詩) ‘사모(思慕)’의 마지막 구절을 조용히 읊조린다.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더이상 떠나보낼 것이 없어 마침내 가을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된 트리스탄의 고독은 계절의 변덕 속에서 숲으로, 숲으로 향해 간다. 1995년 3월 18일 개봉. 러닝타임 133분. 서늘해지는 냉정함이란. 그렇다. 가을은 상실의 계절이다. 짙은 녹음(綠陰)이 적갈색의 시체, 아니 낙엽으로 변해 이내 지상으로 추락하는 만류인력의 법칙은 차라리 상실의 법칙이지 않을까. 그 여름, 그토록 집착했던 나뭇가지를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중력(重力)을 탓하며 지상에 추락한 그때 그 나뭇잎들이 말한다. “어차피 정해진 운명이겠지요”. 하여 몰락의 전설은 어느새 ‘가을의 전설’로 남는다.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주인공 트리스탄(브레드 피트)이 말한다. “뜨거운 심장을 손에 쥘 때 그 영혼은 자유가 된다”. 그가 심장을 손에 쥘 수밖에 없었던 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막내 사무엘(헨리 토마스)이 전사했기 때문. 미국 몬태나주에 살면서 굳이 외면해도 될 전쟁이었지만 정의감이 투철했던 막내는 유럽의 고통을 지켜만 볼 수 없다며 두 형들까지 이끌고 전선으로 갔다가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막내의 주검을 껴안고 울다 이내 분노에 휩싸인 트리스탄, 홀로 적진에 침투해 적들의 심장까지 모조리 챙겨 부대로 복귀한다. 그렇게 트리스탄의 거친 영혼은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동시에 상실의 가을에 영원히 갇힌다.

나뭇가지의 사랑. 떨어지는 낙엽도 낙엽이지만 그걸 지켜보면서 앙상해져 가는 나뭇가지는 혹여 낙엽보다 더 괴롭지 않았을까. 방랑을 시작하는 트리스탄의 뒷모습을 처마 끝에서 바라보는 여인의 슬픈 눈망울이 가을 하늘로 번지고 번지면 광활한 대지는 공허함으로 가득 찬다.

죽이고 죽여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애초에 막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트리스탄의 고독은 더욱 미쳐 날뛰고, 사랑마저 집어삼키며 점점 전설이 되어간다. 허나 그때도 청량한 하늘을 품은 상실의 가을은 절경을 뽐낸다. 다만 아침 햇살에 찰랑이는 은갈색의 수면은 여전히 비수처럼 날카롭다.

그런 가을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는 트리스탄. 인디언 소녀의 수줍은 미소 앞에 마침내 오랜 방랑을 접는다. 그랬다. 폭풍우처럼 거친 사내였지만 그는 카우보이가 아닌 ‘인디언’이었다. 아마도 인디언 학살이 싫어 일찍이 군복을 벗고 대자연의 품에 안긴 아버지 러드로우 대령(안소니 홉킨스)의 피를 물려받아서겠지. 아버지 역시 세 아들 가운데 트리스탄을 가장 아꼈다.

하지만 그런 만큼 형인 알프레드(에이단 퀸)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출세를 꿈꾸며 도시로 나간 형은 한때 트리스탄이 사랑했고, 또 그를 몹시 사랑했던 여인과 부부가 됐다. 운명의 장난이란 이리도 흔하다. 하긴, 지난 여름 시원한 그늘이 되어줬던 빌딩숲이 혹독한 추위로 바뀌는 것도 언제나 시간문제니까. 그래도 트리스탄은 괜찮았다. 오랜 방랑 끝에 그에게도 어깨에 목말을 태운 자신의 사랑스런 아이와 아내가 있었기 때문. 상실의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다.

허나 가을 다음엔 혹독한 겨울. 이제야 겨우 가을의 저주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밀주(미국의 금주법 시대 몰래 만들어진 술) 단속을 위해 보안관이 절벽을 향해 쏜 총알이 운명처럼 튕겨 아내의 살을 파고들 줄이야. 막내가 눈을 감을 때처럼 분노한 트리스탄은 다시 야수가 되어 적의 심장을 손에 움켜쥐고 만다. 이미 다 떨어진 줄 알았는데. 상실감에 젖어 슬피 우는 긴 나뭇가지에는 아직도 떨어질 낙엽이 남았던 걸까.

하지만 그것마저 끝이 아니었다. 보안관의 심장을 움켜진 죄로 감옥에 갇힌 트리스탄을 면회한 여인은 자신이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는 걸 깨닫고는 남편을 뒤로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트리스탄이 사랑했던 사람은 그렇게 모두 그를 떠났다.

드디어 맨몸이 된 앙상한 나뭇가지. 달 밝은 밤에 그 나뭇가지는 술에 취해 조지훈님의 시(詩) ‘사모(思慕)’의 마지막 구절을 조용히 읊조린다.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더이상 떠나보낼 것이 없어 마침내 가을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된 트리스탄의 고독은 계절의 변덕 속에서 숲으로, 숲으로 향해 간다. 1995년 3월 18일 개봉. 러닝타임 133분.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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