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의 가르침
외솔의 가르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0.1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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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미해독자 거수”

40여년전 입영을 위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들었던 말이다. 병무 관련 업무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보충역 병사 한 명이 나타나 불쑥 던진 말이다. 군문에 들어서는 첫 단계에서 제법 긴장하고 있던 수검자들에게 잔뜩 군대식 각을 잡은 채였다. 나도 이 말을 금방 알아듣지 못했다. 그 보충역병이 다시 큰 목소리로 말했을 때야 그 말이 ‘한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손을 들어라’라는 뜻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한글을 읽지 못할 정도의 사람이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 간혹 있었던 시상식에서는 “이하동문”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 또한 초등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은 “아래 내용은 같습니다”라고 하고 있다.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께서 돌아가시고 난 직후에 나온 책이 있다. ‘(유고) 한글만 쓰기의 주장’이란 책이다. 외솔이 짓고 정음사가 펴냈다. 정음사는 외솔이 일제강점기 ‘우리말본’과 ‘한글갈’을 펴내기 위해 만든 출판사다. 책에는 ‘1970년 10월 5일 박음’이라고 적혀 있다. 외솔은 이해 3월에 돌아가셨다.

이 책은 외솔이 평생 연구하고 주장했던 ‘한글만 쓰기’를 해야 하는 까닭과 그 반대론자들의 의혹을 풀어 밝힌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외솔은 여기서 ‘한글만 쓰기’를 주장한 까닭을 ‘교육상의 이익’과 ‘기계화의 효과’, ‘겨레 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위해’, ‘글자 발달의 원리에 순응하기 위해’, ‘시대정신의 요청에 응하기 위해’, ‘겨레의 독립 자존의 정신을 기르기 위해’, ‘겨레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라는 일곱 가지 가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한글만 쓰기는 인류의 경험을 가장 합리적으로 살려 쓰는 것”이라는 말씀과 “한글은 겨레 힘의 샘터”라는 주장이다.

외솔은 글자 발달을 다섯 계단으로 나눴다. 첫째가 매듭글자요 둘째는 그림글자이다. 셋째는 뜻글자 또는 낱말글자이고 넷째는 소리글자이다. 소리글자는 다시 닿소리와 홀소리가 구분되지 않은 낱내글자와 구분이 확실한 낱소리글자로 나뉘는데 한글이 바로 낱소리글자라는 것이다. 낱소리글자는 대표적으로 로마자와 한글이 있는데 한글은 로마자에 비해 과학성과 활용성이 훨씬 뛰어나다고 외솔은 설명한다. 그래서 한글이 가장 합리적인 글자라는 것이다.

외솔은 또 “말은 얼을 나타내고, 글은 말을 나타낸다”며 “배달 겨레의 얼이 가는 곳에 말과 글이 가고 말과 글이 가는 곳에 또한 얼이 간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한글은 겨레 힘의 샘터’이며 ‘한글이 목숨’인 것이다.

외솔이 주장한 ‘한글만 쓰기’는 단순히 한글로만 표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자말이나 외국어가 아닌 우리말을 살려 쓰자는 것이다.

울산시 중구는 2021년 ‘한글도시 울산 중구’를 선포했다. 중구가 외솔의 고향이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당연히 외솔의 가르침을 앞서 따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우리말을 씀에 중구는 남달라야 할 것이다. 중구뿐 아니라 울산시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울산사람들은 1960년 4·19 직후에 학성공원에 광복회총사령박상진의사추모비를 세웠다. 외솔의 고장, 울산사람들답게 빗글은 모두 한글로만 썼다. 60여년전의 일이다.

병영에 있는 외솔생가터에서는 ‘외솔 내외 무덤’이라고 쓰여진 빗돌을 볼 수 있다. 외솔이 우리말과 한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고 가르쳤는지를 잘 알게 해주는 말이다.

강귀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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