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詩]사기(沙記) / 임창연
[디카+詩]사기(沙記) / 임창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0.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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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쌓아 올린 알갱이 산

 

바람의 사관(史官)이 기록하는

모래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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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시월을 시작합니다. 시월하고 부르면 왠지 센티 해지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 떨어져 뒹구는 가을이라도 하나 찍고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싶은 계절에 임창연 시인의 디카시 ‘사기(沙記)’를 감상합니다.

한문 없이 읽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제목과 알쏭달쏭 한 언술이지만 한문과 함께 모래가 기록한 역사로 한 번 더 읽어보면 “시간이/쌓아 올린 알갱이 산//바람의 사관(史官)이 기록하는/모래의 나날”긴 세월에 걸쳐 철학이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높다란 산이 거대한 바위가 억겁의 세월을 거치지 않고서는 모래알과 같이 작은 존재가 될 수 없고 또 수많은 세월이 지나야 먼지가 되어 원래 없던 무(無)의 세계에 가닿는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바람에도 온몸을 뒤척이며 공 굴리듯 순응하며 작아지는 삶의 기록 거센 파도에 기록이 사라진다 하여도 쓰고 또 쓰는 사기(沙記)는 맨발로 모래 위를 걸어본다면 발자국이 움푹 패일 때마다 수백수천의 기록이 꿈틀거리며 뒤따라온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모래는 작고 흔해서 무시당하는 기록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현시대를 지탱하는 기둥 또한 모래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제가 디카시를 설명할 때 꼭 쓰는 비유 중에“콘크리트”모래와 자갈과 시멘트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콘크리트가 없다면 고층 건물도 지을 수 없을 것이며 모래가 없다면 유리제품도 없을 것이며 지갑보다 귀한 핸드폰도 못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모래의 나날을 기록한 사관(史官)을 임창연 시인의 디카시 사기(沙記)로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사진과 5행 이하의 언술이 어우러져 콘크리트와 같이 따로따로 분리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하나의 문학 작품인 디카시에 이 가을에는 흠뻑 빠져보기를 바랍니다. 글=이시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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