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아, 날아라!
학아, 날아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9.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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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가 남으로 갈 때 귀뚜라미의 등에 업혀서 찾아온다’는 가을의 문턱이다. 다음 글은 범곡(梵谷) 김태근(金兌根·1920~2011) 선생께서 2006년 9월 필자에게 주셨던 글이다.

“학아 날아라 -전통 문화재 제정 제안-

AD 8·9세기경 우리 울산에서는 아주 주목할 두 가지 설화가 생겨났다. 그 첫째가 875년, 신라 49대 헌강왕이 개운포에서 처용을 만남으로써 비롯된 처용설화(處容說話)이고, 두 번째가 901년 신라 52대 효공왕 때 계변천신(戒邊天神)이 불상(佛像)을 입에 문 학(鶴)을 타고 학성(鶴城)에 내렸다는 계변천신 강림 설화이다.

처용설화에서는 관용의 덕목을 심기 위해 아내의 불륜을 보고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는 사실이 처용가와 처용무로 가꾸어져 우리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가 하면, 계변천신 설화에서 학성에 내린 천신이 인간의 수록(壽祿)을 설했다는 것은 지리학적 연유를 말해주고, 학이 춤을 추었다는 것은 학춤의 기원(起源)을 말해준다.

천신이 내렸다는 강신산(降神山)은 신라의 계변성(戒邊城=울산의 옛 지명) 즉 지금의 ‘개변고개’를, 학이 날아갔다는 곳은 지금의 학성공원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때의 유불(儒佛) 사상보다 더 뿌리가 깊었던 선교(仙敎)의 정서 때문에 실제로는 신선(神仙)이 학을 타고 날아갔다고 전해져 왔다.

오늘날 학춤은 동래학춤, 양산사찰학춤만 전해져 오고 있으나, 그 근원은 밝혀내지 못하고 내 것, 네 것만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계변천신 설화에서 학이 불상을 물고 왔다는 것은 불교사찰과 연계되고, 불교 청정심(淸淨心)의 상징으로 학을 가장 친근하게 자주 보아왔던 무승(舞僧)들이 이를 학춤으로 개발했고, 그 학춤에 매혹된 마을 춤꾼들이 그것을 전수받아 들놀이에 참가하면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전래하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유래담일 것이다.

십 년 전(1997년) 울산학춤보존회를 설립한 김성수 씨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춤사위만을 익힌 기능보유자가 아니라 그동안 울산학춤 연구, 사찰학춤 연구 등 학춤에 관한 학구적 연구논문을 책으로 엮어냈다. 그의 춤사위를 보면 그는 민간계 사찰학춤의 명무(名舞)였던 할아버지, 아버지의 혈통을 이어받아 피나는 노력으로 갈고닦은 이론과 기능을 겸비한 선천적인 춤꾼이다. 이번 울산학춤보존회 설립 10주년 기념공연을 우리는 깊은 애정과 평가의 관심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이번 학춤 연희(演?)는 한 연구소의 연예(演藝) 이벤트가 아니라, 울산의 전통 문화재를 확보하기 위한 문화적 가치 평가의 과정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울산에는 아직도 ‘이것’이라고 내놓을 만한 문화 콘텐츠가 없다. 처용의 고장으로서 처용가(處容歌), 처용무(處容舞)를 울산 전통문화의 근간으로 삼아야겠는데 이를 계승할 이수자는 없다. 그러나 울산학춤만은 김성수 씨에 의해 그 이론이 정립되고 그 기능이 연마되어 어디에 내놓아도 기죽을 것 없는 울산을 대표할 문화상품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제 울산학춤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이 춤을 울산의 전통 문화재로 만들자는 것을 주저 없이 제언하는 바이다.”(2006. 6. 19. 김태근 울산예총 고문)

범곡 선생은 1945년 울산 최초의 문예지인 ‘태화강’을 창간했고, 1947년 ‘울산극우회’를 조직한 뒤 연극 ‘혁명가의 후예’를 공연했다. 2006년 9월, 선생은 문화논설집 「함월산」을 펴냈다. 선생은 속글을 통해 “나는 논객이 아니다. 그럼에도 본업인 문학을 제쳐놓고 문화에 관한 논설집을 내는 것이 객쩍은 일이지만 울산의 문화풍토를 조성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제언(提言) 또는 고어(苦語)”라고 말했다.

울산문화예술계는 범곡 선생을 ‘울산연극의 뿌리’라고 표현한다. 선생은 극작가이자 수필가였고, 연극인이기도 했다. 선생께서 언급하셨던 울산학춤보존회(1997년 창립)의 제26주년 기념공연이 바로 오늘 9월 26일 저녁 7시 30분, 중구 성안동 ‘아트홀 마당’에서 열린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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