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짐머’ 음악 연주 콘서트를 보고 영화음악, 그 불멸의 세계
‘한스 짐머’ 음악 연주 콘서트를 보고 영화음악, 그 불멸의 세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9.1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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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영화음악에 대해 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주 어릴 적에 봤던 영화 <나자리노>의 OST인 ‘When a child is born’이었던 것. 그 시절 TV영화 방영 프로그램인 K본부의 ‘명화극장’으로 기억되는데 늦은 겨울 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 식구가 다 같이 보게 된 영화였다.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동생도 그날따라 잠을 안 자고 같이 영화를 봤고,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하는 소년 나자리노(후안 호세 카메로)와 금발의 미소녀 그리셀다(마리나 마갈리)의 치명적이고 가슴아픈 사랑이야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OST는 그야말로 ‘신세계’ 그 자체였다. ‘뭐 이런 음(音)이 다 있지?’ 싶었는데 오죽했으면 당시 엄마도 영화가 끝난 뒤 연탄불을 갈면서 그 음을 흥얼거리셨더랬다.

나 역시 그날 밤, 내일 아침이면 까먹을 거 같다는 걱정에 그 음을 계속 흥얼거리며 잠이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아침이 되어선 홀랑 잊어버리고 말았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다시 그 음을 듣고 기억해낸 건 수년 뒤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이후 영화 <네버엔딩 스토리>의 주제곡인 Limahl의 ‘Never ending srory’나 <라붐>시리즈의 주제곡인 Richard sanderson의 ‘Reality’와 Cook Da Books의 ‘Your eyes’, <영웅본색>의 주제곡인 장국영의 ‘당연정(當年情)’, ‘천약유정(天若有情)’ 등 <천장지구>의 OST 전곡, <터미네이터2>의 오프닝곡, <러브레터>의 ‘Winter story’, <타이타닉>의 ‘My heart will go on’ 등등을 거쳐 마침내 <다크 나이트> 3부작에 이르게 됐다.

사실 넘쳐나는 슈퍼히어로 무비 가운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가 단연 발군인 건 영화 자체의 놀라운 퀄리티도 있지만 ‘한스 짐머(Hans Zimmer)’라는 천재 영화음악 작곡가가 창조해낸 OST의 역할도 굉장하다.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이 등장할 때 천둥이 치듯, 박쥐가 날갯짓을 하듯 웅장하면서 경쾌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은 비록 다른 슈퍼히어로들처럼 슈퍼 파워는 없지만 배트맨을 가장 강한 슈퍼히어로로 느껴지게 만들 정도다. 영화 상에서도 이 느낌이 영 틀린 건 아닌 게, 아직 영화로 제작되진 않았지만 로이스(에이미 아담스)가 죽고 난 뒤 그녀의 죽음에 분노한 DC유니버스 최강의 슈퍼맨(헨리 카빌)이 흑화(악당으로 돌변)한 것에 반해 배트맨은 2008년 개봉했던 <다크 나이트>에서 사랑하는 레이첼(매기 질렌할)의 죽음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꽂꽂하게 버티며 고담시를 지킨다. 이렇게 마음이 강한 배트맨에게 한스 짐머가 선사한 선율은 더할나위 없이 완벽했고, 해서 난 지금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으로 <다크 나이트> OST를 꼽는데 한 치의 주저함도 없다. 아니, <다크 나이트> OST를 통해 ‘한스 짐머’라는 천재 영화음악 작곡가를 제대로 알게 됐고, 그가 이미 내가 좋아했던 영화음악들, 가령 <캐러비안 해적>이나 <진주만> 등의 OST를 작곡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이후로 그는 <인셉션>과 <인터스텔라>, 최근에는 <탑건:매버릭>의 OST까지 완성했다.

이런 한스 짐머의 최대 역작인 <다크 나이트> OST를 무선 이어폰이 아닌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로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건 대략 두 달 전 쯤. 집 근처 현대예술관을 지나가다 우연히 광고 포스터를 보게 된 것이다.(딱 걸렸어!) 결국 지인(b)을 통해 빛의 속도로 티켓을 예매하게 됐고, 이제나 저제나 공연일만을 기다렸다. 어찌나 시간이 안 가던지.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공연일. 울산에 올 일은 없었던 한스 짐머가 스크린에 먼저 등장해 자신의 음악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마치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잠시 뒤 45인조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율이 울려퍼지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영화관이 아닌 공연장에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1부는 한스 짐머가 작곡한 게임 음악이었고, 2부가 영화음악이었는데 솔직히 1부가 빨리 끝나길 내심 기다렸다. 뭐 그래봤자 40분 정도였고, 드디어 스크린에 배트맨이 등장하면서 <다크 나이트> OST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어폰으로 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는데 시쳇말로 웅장이 가슴해지더라. <진주만>과 <인셉션>, <인터스텔라> OST가 빠져 조금 아쉽긴 했지만 라이브로 <다크 나이트> OST를 들었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음식과는 달리 대중문화는 워낙에 잡식성이라 가요나 팝송, 혹은 재즈나 헤비메탈, 또는 아주 가끔 클래식까지 들으며 살았지만 영화음악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건 ‘영화’라는 몸뚱어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영화음악은 영화라는 육체에 ‘영혼’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영혼은 늙지 않는다.

지금 <나자리노>라는 영화를 다시 보면 분명 늙고 촌스럽겠지만 OST는 그때 그대로다. 그때 내 마음이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이듯. 해서 ‘영화음악’이라 쓰고 감히 ‘불멸’이라 읽는다. 2023년 9월 8일 현대예술관 공연.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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