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특별한 잠정합의안
현대차의 특별한 잠정합의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9.14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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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잠정합의안’이 존재한다. 기업체 수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데다 거의 해마다 노사 협상을 통해 잠정합의안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울산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올해 잠정합의안은 조금 남다르다.

우선 노사가 합심해 국내공장 체질 개선 방안을 담았다는게 눈에 띈다. 바로 ‘하이퍼 캐스팅(첨단 신기술 제조방식)’이 그것으로 노사는 품질과 생산성 제고를 위해 기존 로봇을 이용해 여러 개의 철판을 용접하는 방식이 아닌 대형 다이캐스팅(Die-Casting·주조) 장비를 활용키로 합의했다. 현대차는 전동화 전환과 차체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 보디를 확대 적용키로 했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다이캐스팅 기술 적용이다. 관련해 노사는 기존 엔진, 변속기 공장 유휴 부지 등 적정 부지를 검토해 올해 말까지 부지를 확정하고 내년 착공, 2026년부터 본격 양산한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노사는 고급 모델 등 다양한 차종 생산을 위한 ‘다기능 다목적 생산공장’도 추진키로 했다. 이 새로운 공장을 통해 기존 생산라인에서 만들 수 없었던 컨버터블 등 고급 모델이나 리미티드 에디션, 신개념 실증 모델 등 특수 차량을 소량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다소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결론은 노사가 한 해 실적을 놓고 서로 더 받고 덜 주고의 이기적인 게임에서 벗어나 회사의 발전을 위한 합의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잠정합의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사회적 난제인 저출산의 심각성에 노사가 함께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원 지원 대책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세부적으로 난임 유급 휴가를 기존 3일에서 5일(유급)로 확대했으며 난임 시술비(시술 1회당 실비 100만원)를 무제한 지원하기로 했다. 또 출산축하금을 대폭 확대해 첫째 300만원, 둘째 400만원, 셋째 이상 500만원을 지원키로 하고, ‘엄마, 아빠 바우처’ 제도도 신설해 직원 자녀가 첫돌을 맞으면 첫째 50만원, 둘째 100만원, 셋째 이상 15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아울러 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아 교육비를 만 4세부터 5세까지 2년간 총 240만원 지원하고, 육아 휴직 2년 보장 외 추가로 단축 근로 1년을 더 지원키로 했다. 결론적으로는 노조원들의 복지를 좀 더 확대하는 흔한 내용 같지만 이 합의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결코 범상치 않다.

앞서 노사는 올해 임단협 교섭이 가장 치열했던 지난 7월에 난데없이 서로 합심해 ‘저출산/육아지원 노사 TFT’를 결성했다. 현재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저출산 문제에 대해 노사 차원의 대책을 모색하고 직원들의 생애주기(결혼-임신-출산-육아-취학)에 기반한 종합적인 출산 및 육아 지원 방안을 함께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안이 ‘공익(公益)’에 기반을 둔 점도 의외지만 이후 TFT의 행보는 더욱 빛을 발했다. 현대차 전주공장에 근무 중인 8자녀 직원 가족을 시작으로 사내 다자녀 가족들을 일일이 찾아 면담을 하면서 그들의 고충과 건의사항을 듣고는 앞서 상세하게 설명한 합의안을 마련한 것이다. 결국 기존의 일방적인 요구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향후 노사 간 단체협약과 관련해 새 지평을 열게 될 것 같은 기대감마저 든다.

이런 잠정합의안이 이제 조합원 찬반투표라는 최종 관문만을 남겨두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게 차별화되고 진보적인 잠정합의안은 ‘부결’이라는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건 또 울산시민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 얼마 뒤면 추석이기도 하니까.

이상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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