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낄’과 ‘빠빠’ 그리고 ‘꾸꾸’
‘낄낄’과 ‘빠빠’ 그리고 ‘꾸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9.1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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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과 ‘빠빠’ 그리고 ‘꾸꾸’는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축약된 소통언어 중 하나다. ‘낄낄’은 ‘낄 때는 낀다’, ‘빠빠’는 ‘빠질 때 빠져준다’, ‘꾸꾸’는 ‘꾸미고 또 꾸민다’(꾸미고 가꾼다)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스승과 제자의 건강한 관계, 낄낄과 빠빠의 사례를 소개한다.

매주 수요일은 울산학춤보존회 회원들이 전수관에서 울산학춤을 연습하는 날이다. 두세 시간 연습이 끝나고, 삼십 대 제자 네 명이 전수관을 나서면서, “선생님, 저희와 저녁 식사하러 가시죠”라고 했다. 난 이미 저들끼리 의논할 게 있을 줄 알고 있었던 터라 웃으면서 “아니, 난 빠빠빠이네”라고 했다. 순간 모두 웃었다. 그들도 눈치를 챘는지 더는 권하지 않았다.

눈치 없이 ‘낄낄’과 ‘빠빠’를 모르면 수시로 ‘~카더라’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낄낄이 매사에 버들강아지처럼 보드라운 행동이라면, 빠빠는 간혹 쐐기벌레처럼 톡톡 쏘아붙이는 행동에 비유할 수 있다. 초청받지 않은 낄낄은 자칫 소모적 논쟁으로 지루한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낄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기만의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낄 때라고 끼는 본인은 알지 못해도 옆에서 보는 사람은 수캐가 제 영역을 표시하려고 매일 돌아다니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통지(通知)와 상의(相議)를 구별하지 못하고, 약속을 번복하고 이해 못 할 자기의 행위를 합리화하다 보면 외면당해 외로운 삶을 살 수도 있다.

낄낄은 자주 날아다니는 새와 발걸음이 가벼운 동물에 비유할 수 있다. 새는 그물의 화를, 동물은 화살의 화를 피하기 어려운 탓이다. 또 빠빠는 흉사마저 그렇게 한다면 이 또한 우리 정서에는 맞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꾸미고 가꾼다’는 ‘꾸꾸’는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서 꾸미고 가꾸는 것은, 전문성을 기르고 취미를 즐기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꾸꾸는 낄낄과 빠빠로 고민할 이유가 없다. 꾸꾸는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식에게 투영해 대리만족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재능이나 흥미를 심화시키고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꾸꾸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하는 행위다. 그 결과는 자기만족과 보람 그리고 주위의 인정과 칭찬으로 이어진다.

낄낄의 마음은 살구씨 기름을 맛본 여우의 초조함에서 벗어나야 하고, 빠빠는 쑥과 마늘을 먹고 오랜 시간 기다릴 줄 아는 곰 같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낄낄과 빠빠는 본인이 아전인수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조언과 충고를 귀담아듣고 실천함을 의미한다.

망성리 욱곡(旭谷)을 찾았다. 앞은 무학산(舞鶴山), 뒤는 연화산(蓮花山)이 둘러싼 곳이다. 그날 전깃줄에는 제비 수십 마리가 깃 고르기를 하며 구월 초순의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지인의 형인 이규수 선생은 무안중투 동백과 무늬 동백 등 두 종을 필자에게 선물했다. 문득 사계절 피어 있는 은월사(隱月祠) 학두홍동백(鶴頭紅冬栢=학의 붉은 머리 같은 붉은 동백) 벽화가 생각났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는 문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시 〈동백화(冬栢花)〉를 만날 수 있다. 그 내용은 “소나무 잣나무는 두드러지지는 않아도 추위를 견디므로 귀히 여긴다. 여기,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으니 잣나무보다 낫다. 동백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낄낄과 빠빠보다 꾸꾸가 좋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근래에 ‘낄낄’과 ‘빠빠’에 연연하지 않고 ‘꾸꾸’를 선택해서 마음의 건강을 누리는 일이 많아졌다. 설령 문화예술인의 모임일지라도….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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