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 진열 현장을 가다
로컬푸드 진열 현장을 가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9.0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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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곧 새로운 장면과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비슷한 나날들이 반복되는 날도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들도 자주 있다. 보름 전쯤 이른 새벽 시간에 나는 로컬 푸드 상품을 차에 싣고 북구 진장동에 있는 ‘농협 하나로 마트’에 갔다. 그곳 매장에 거의 매일 납품을 하러 가는 지인의 사정 때문에 내가 운송을 대신해준 것이다. 나흘 중 마지막 날은 납품하러 온 사람들과 함께 로컬 푸드 진열 현장까지 따라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놀라운 장면들을 보았다. 그야말로 ‘체험 삶의 현장’을 목격한 셈인데, 각자 장만해온 상품들이 너무도 다양하구나 싶었다. 생산자들은 판매 촉진과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제법 넓다 싶은 진열대마다 생산자 성명과 연락처, 분량과 가격 등이 명기된 라벨들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명확한 실명제를 이행하고 있는 셈인데, 로컬 푸드 상품들이 순식간에 진열대를 채웠다.

납품과 진열 현장을 목격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사람들이 정말 이렇게 부지런히 살고들 있구나 싶었다. 다들 농사를 지어도 각자 갖고 있는 재주와 농사짓는 방식에 따라 이렇게나 많이 다양한 먹을거리들이 생산되는구나 싶기도 했다. 이 상품들은 하나같이 자연에서 얻은 것인데, 파종이나 식재에서부터 거두고 상품화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을 거쳤을까 싶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지혜와 성실로 일관하는 생산자들의 삶에 존경하는 마음도 생겼다.

나흘 동안 같은 차로 오가면서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납품 조건에는 저농약 사용, 분해 기간이 짧은 규격 용기 사용, 채소류 등 신선도 유지가 짧은 상품의 일일 재고처리 등이다. 이런 부분이 어긋나는 경우 가차 없이 퇴출당한다는 것은 곧 농협 측이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점포 없이 판로 걱정 안 하면서 납품할 수 있으니 참 고맙지 아니한가’ 하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농들에게는 로컬 푸드야말로 정말 좋은 판매방식인 것이다.

로컬 푸드는 소비자가 거주하는 지역(Local)에서 생산된 농산물(Food)을 말한다. 즉,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운동이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생산지에서 소비자까지의 거리를 최대한 줄여 비교적 좁은 지역을 단위로 하는 농업식품 수급체계이기도 하다. 로컬 푸드를 소비함으로써 환경을 보호하면서 생산자의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하고, 나아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성을 형성하고 지역 경제 발전 등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오늘날은 ‘글로벌푸드시스템’도 가동되는 시대이다. 수입 식품이 불가피한 부분도 있지만 엄청난 푸드 마일리지 때문에 많은 탄소를 배출시킨다. 이런 이유로 생겨난 것이 ‘로컬 푸드 운동’이다. 캐나다의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 이탈리아의 패스트푸드의 상대 개념인 ‘슬로푸드 운동’, 네델란드의 ‘그린케어 팜’, 미국의 ‘파머스 마켓’과 ‘공동체지원농업(CSA), 일본의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로컬 푸드 운동’의 모습은 나라마다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로컬 푸드 운동’은 2018년부터 농협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형태로는 장흥의 토요시장인 ‘할머니 장터’, ‘학교 급식을 로컬 푸드로 대체하기’, 매일 배송해 주는 생명 밥상 ‘봄내 살림’, 사전 계약을 맺고 매주 공급을 받는 ‘소비자 참여형 농업’ 등이 있다. 이처럼 ‘로컬 푸드 운동’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가장 선두에는 농협 하나로 마트가 있다. 대형 할인마트에도 ‘로컬 푸드 매장’을 운영하면 더 확산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농협은 농민들의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농산물의 판로 확대를 도모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따라서 농협은 신토불이, 몸과 땅이 다르지 않음을 더 깊이 인식하고 로컬 푸드 매장 비율을 높여나가야 한다. 또한 조합원뿐만 아니라 텃밭 경작자들의 잉여 농산물도 로컬 푸드 매장에 납품할 기회를 열어주면 매장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처럼 지역 농산물 판매를 늘려나가면 소비자도 더 신선하고 안전한 식품을 밥상 위에 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정호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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