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 원자(原子), 폭탄(Bomb)
영화 ‘오펜하이머’ 원자(原子), 폭탄(Bomb)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8.3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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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

190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 ~1955)이 특수상대성 이론을 통해 발표한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E=mc²)’가 혁명적인 건 에너지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인슈타인 이전까지 뉴턴의 고전역학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물체는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 바닥에 가만히 놓여 있는 돌맹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누군가 그걸 들어 던졌을 땐 엄청난 에너지를 갖게 된다. 맞으면 아프잖아.

하지만 아인슈타인에 의해 ‘E=mc²’가 발견되면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돌맹이도 그 자체만으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게 입증된다. 바로 질량 자체가 에너지라는 것. 다시 말해 돌맹이의 질량을 결정하는 최소단위인 원자핵이 쪼개져 질량이 줄어들면 줄어든 만큼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가만히 있는 돌맹이지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 크게 다치게 된다. 굳이 던져서 맞추지 않아도.

‘아니, 예를 들어도 왜 하필 에너지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식이냐’고 생각하시겠지만 ‘E=mc²’의 발견은 원자폭탄(핵무기)이라는 인류 최악의 무기 생산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원리를 발견한 아인슈타인조차 스스로 후회를 했다고 한다.

허나 아무리 똑똑한 아인슈타인이라도 앞날을 내다볼 순 없는 법.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 휘하에 있던 과학자가 ‘E=mc²’을 토대로 우라늄 핵분열에 성공, 무기 개발에 나서면서 나치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당대 유명 과학자들이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 모여 소위 ‘맨하튼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수장이 바로 ‘로버트 오펜하이머’이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신작 <오펜하이머>를 통해 그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핵무기 개발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니 잠깐, ‘잔잔하게’라고? 수만 명을 일시에 살상케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지닌 원자폭탄의 개발과정이 어떻게 잔잔할 수가 있지? 하지만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 사막 한 가운데서 벌어진 인류 최초의 핵무기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묘사하는데 있어서도 놀란 감독은 소리는 최대한 배제한 채 밝게 빛나는 폭발 풍경만을 스크린에 담아낸다. 또 한 달여 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는 장면은 아예 스크린에 담지도 않고 배우들의 대사로만 흘려보낸다.

대신 놀란 감독은 핵무기 개발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뭉쳤던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 과학자들이 원폭 투하 이후 분열되어 가는 모습에 집중하는데 원폭이 터지는 풍경보다 더 요란한 그 과정은 흡사 원자폭탄의 원리인 핵분열과 닮았다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던진다. 특히 각 캐릭터들이 당긴 방아쇠가 다른 인물을 부채질하는 모습은 원자핵이 쪼개지면서 튀어 나온 중성자가 다른 원자핵을 때려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모습과 같은 원리로 볼 수 있다.

허나 진짜는 따로 숨겨두고 있는데 바로 주인공 오펜하이머의 내적(심적) 분열. 실제 삶도 그랬지만 영화 초반부터 천재이긴 하나 불완전한 인간으로 그려지는 오펜하이머의 심리상태는 가끔씩 등장하는 미시세계의 핵분열 장면과 묘하게 겹쳐져 그를 폭발 직전까지 이르게 하면서 마치 인간과 물질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오펜하이머의 이 대사. 그는 아내인 키티(에밀리 블런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도, 나도, 이 탁자도, 이 옷도, 모두 원자(原子)로 이뤄져 있고, 그 안은 텅텅 비었어” 사람이든, 사물이든 최소단위인 근본은 같다는 것으로 결국 미시세계에선 인간이라고 특별할 게 전혀 없다는 뜻이다.

전세계 핵무기 보유량이 1만개를 훌쩍 넘긴 지금, 이젠 고유명사처럼 흔하디 흔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원자폭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렇잖은가. 우주만물의 근원인 원자(原子)는 ‘창조’지만 폭탄(bomb)은 ‘파괴’이기 때문. 헌데 우리 인간은 기어코 원자를 쪼개서 결국 어마무시한 폭탄을 만들어버렸다. 그래놓고 인간들은 늘 발전과 번영을 부르짖는다.

쪼개지면 폭탄이 되는 원자가 모순이듯 인간이란 존재와 그들이 사는 세상은 참으로 모순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하긴, 파괴가 있어야 창조도 있으니까. 일본에 떨어진 원폭 두 방으로 우리나라는 독립을 했잖는가.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트리니티 실험 후 오펜하이머가 한 말)고? 웃기고 있네. 영화 보는 내내 내눈에는 그냥 지극히 불완전한 한 명의 인간으로밖에 안 보이더라.

나만 해도 좀 전에 원자를 쪼개 폭탄을 만든 인간을 비난해 놓고는 쪼개진 원자로 발생된 전기(원자력발전)를 쓰며 좋다고 이 글을 쓰고 있지 않는가. 그래도 우짜라꼬? 짜더러 핵무기가 아니라도 어차피 언젠가 지구는 멸망할 건데 그냥 저냥 사는 거지. 하루하루 재밌게. 훗. 2023년 8월 15일 개봉, 러닝타임 180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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