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예방 ③ 레지오넬라
감염병 예방 ③ 레지오넬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8.2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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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성전염병(水因性傳染病)이란 말 그대로 ‘오염된 물이 원인이 되는 질병’이다. 인간이 모여 살기 시작한 이래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 왔고 그만큼 대책도 널리 알려져 대부분은 물을 30분 이상 끓여 먹는 것만으로도 쉽게 예방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직도 흔한 질병이지만 상하수도 시설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발생이 드물며, 대규모 집단감염사태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작년 여름, 세계적 위생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강남 한복판에서 오염된 물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감염사태가 발생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감염관리를 철저히 하던 중에 발생한 사건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소위 ‘강남 역병’이라 불린 이 사태의 가장 강력한 원인으로 의심된 것은 ‘레지오넬라증’이었다.

레지오넬라증은 이 균에 오염된 물이 원인이기는 해도 오염된 물을 직접 마셔 소화기 감염 형태로 나타나는 일반적 수인성 감염병과는 그 경로가 다르다. 레지오넬라균에 오염된 물이 아주 작은 분무입자 형태로 공기 중에 퍼져 있다가 사람이 숨을 쉴 때 감염된다. 원인은 오염된 물이지만 소화기가 아닌 호흡기로 침입하고 증상도 독감이나 폐렴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감기 등 일반적인 호흡기 감염병으로 오해할 수 있고, 원인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른 감염병과는 달리 레지오넬라증이 집단 감염으로 이어지려면 오염된 물을 에어로졸 형태로 여러 사람에게 퍼트릴 수 있어야 하므로 그 원인은 에어컨이 발명된 20세기 후반에야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다.

1976년 7월 21일 미국 재향군인협회(The American Legion)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필라델피아의 한 호텔에 4천400명이 넘는 회원과 그 가족을 초청해 성대한 총회를 치렀다. 그런데 총회 기간 중 일부 회원들이 고열과 기침을 동반한 폐렴으로 쓰러지는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노령의 재향군인들이 여행 중에 컨디션 난조로 폐렴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총회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환자가 211명이나 발생했고 그중 34명이 사망하기에 이른다. 보건당국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환경적 요인도 발견하지 못했고, 환자들의 가검물에서도 특별한 병원균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정체 모를 병은 ‘재향군인병(legionellosis)’이라 불렸고,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6개월 후 매우 특이한 배양 환경에서만 자라는 원인균임을 밝혀냈다. 몇 년 후 이 미생물의 이름은 ‘레지오넬라 뉴모필라(Legionella pneumophila)’로 불리게 된다. 레지오넬라(Legionella)는 미국재향군인협회명(American Legion)에서 따왔고, ‘뉴모필라’는 ‘공기(pneumo)’를 ‘좋아한다(phila)’는 뜻이다. 레지오넬라균의 정체가 밝혀지자 8년 전의 비슷한 사건이 다시 조명받았다. 미국 미시건주 폰티악의 한 건물에서 일하던 사람 100명 중 95명이 원인불명의 고열, 설사, 구토, 가슴 통증을 앓은 사건으로, 당시에는 병의 정체를 몰라 ‘폰티악 열’로 불렀다. 이 환자들 역시 같은 에어컨에서 나온 공기를 쐬었던 사람들이었고, 이들의 혈액을 조사한 결과 레지오넬라균이 일으킨 병으로 확인되었다.

레지오넬라균은 하천, 호수, 토양 등의 자연환경, 에어컨과 같은 냉방시설의 냉각탑수, 온수시설, 샤워기, 스파, 목욕탕, 온천, 분수, 수영장, 물놀이시설, 가습기, 치료용 분무기, 호흡기치료장치 등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균은 25~42도의 수온에서 증식하므로 인간이 만들어낸 대형건물의 냉각탑수나 온천시설은 레지오넬라균이 증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증식한 레지오넬라균은 물 분자 입자의 형태로 호흡기를 통해 폐포까지 들어가 증식해서 질병을 일으킨다. 국내에서는 1984년 모 병원의 에어컨을 통해 처음으로 집단 감염이 일어났고, 현재도 감염사례가 온천이나 수영장 등지에서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감염병과 달리 사람 간의 전파는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레지오넬라증 예방에는 환경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호텔, 병원, 공동주택, 목욕탕, 찜질방, 온천, 수영장, 분수대, 쇼핑센터, 공항, 철도의 급수시설과 냉각탑은 관련 법령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여름철은 에어컨 사용과 레지오렐라증의 발생이 증가하는 시기다. 시설관리자들은 급수시설, 냉각탑 등의 주기적인 청소와 소독, 수온 및 소독제의 잔류 농도 관리 등 철저한 환경관리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 (‘감염병 예방’ 끝)

강동윤 울산시 감염병관리지원단 부단장

울산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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