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막이의 힘
칸막이의 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8.2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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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나는(?) 개학을 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신나는 마음을 달래러 급식실로 갔더니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코로나 기간에 설치했던 칸막이가 철거되고 급식실이 훨씬 넓어진 것 같았다. 투명한 칸막이라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사라지고 나니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공간이 달라지니 식사 풍경도 달라졌다.

칸막이가 있을 때는 암묵적으로 옆 사람과 한 칸씩 띄워서 앉았던 것 같다. 자리가 없으면 다른 선생님 옆에 앉기도 했지만, 조용히 식사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내 마스크 의무가 해제되었을 때도 옆 사람과 대화하며 밥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른바 ‘혼밥’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칸막이가 사라지니 다른 선생님 옆에 자연스럽게 게 되었다. 뭐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서로 학교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로 대화하며 함께 식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칸막이가 없어져서 처음에는 좀 어색해했지만 금방 적응하고 점심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공간의 힘이 참 큰 것 같다. 학교라는 공간을 어떻게 나누고 배치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 같다. 학교 운동장이 그렇다. 아직도 대부분의 학교 운동장은 군대 연병장 같다. 넓은 운동장에 조례대와 스탠드가 있고 양 끝으로는 축구 골대가 있다. 뛰거나 축구를 하기 딱 좋은 공간이다. 그래서 운동장은 대체로 남학생들의 축구장이 된다. 축구를 하는 동안 다른 학생들은 운동장을 쓰기가 어렵고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필자가 재직 중인 학교에는 작년에 운동장 주변으로 학생들이 쉴 수 있는 벤치와 대화할 수 있는 공간, 산책로가 조성되었다.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니 신기하게도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하거나 산책로를 따라 걷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수업 시간에도 공간이 가지는 힘을 실감한다. 교실은 칠판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런 구조는 교사가 알고 있는 교과 지식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강의식 수업에는 무척 효율적이다. 아이들은 교사의 설명을 듣고 칠판에 정리한 내용을 필기한다. 교사는 수업에 참여하는 모든 아이의 얼굴을 한눈에 보고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딴짓하는 아이들은 없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들끼리 서로 대화하는 것은 수업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고 그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교실 배치는 다른 형태의 수업에는 효율적이지 않다. 필자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토론과 탐구를 주로 진행하는 편이다. 학생들이 교재를 읽고 질문을 선택한다. 전체 질문을 중심으로 각자가 가진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디딤돌 삼아 더 합당한 판단을 내리도록 한다. 이런 수업에서는 아이들의 대화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탐구 수업을 할 때는 책상을 ‘ㄷ’자 형태로 배치한다. 아이들이 서로 마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이 시선의 방향을 규정하고 이는 서로의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아이들은 교사로부터 일방적으로 지식을 습득하지는 않는다. 교사도 탐구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참가하게 된다. 타당한 근거가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타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미셸 푸코’는 학교가 교도소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학교의 담벼락이 교도소의 첫 번째 울타리가 되고, 학교 건물은 두 번째 장벽이 된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크기의 네모난 교실은 감방이 되는 셈이다. 물론 교실에는 교도관 대신 교사가 들어온다. 다소 거친 표현일 수도 있지만, 학교가 지닌 공간적 특성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학교의 구조를 통해 아이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이들과 교사가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아이들은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서 지낸다. 아이들은 다른 학생들 그리고 교사와 공간에 담긴 철학을 공유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필자의 생각에 학교는 현재의 사회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이 가진 흥미와 욕구가 미래의 자신이나 공동체와 연결되고 이를 통해 의미를 형성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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