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빼고 다 학교 다’
‘학교 빼고 다 학교 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8.21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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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조무호-도롱뇽 알집은우주 정거장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비나 나방 날개를 만지고 난 뒤 눈을 비비면 눈이 먼다는데 사실인가요?” 그는 싱긋 웃으며 “나비나 나방 날개 표면에는 작은 비늘 가루 분비물이 나와요. 만지면 미끈거리고 기분이 나쁘죠.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아요.”

생태연구가 조무호 선생 대답이다. 1998년부터 우리나라 식물, 새, 곤충들을 찾아다니며 연구하고 이를 디지털화해 ‘곤충 생일지도’를 만든 사람이다. 이 작업은 곧 닥칠 미래, 기후 위기와 곤충 간 관계를 연구하는 귀한 자료로 지금도 작업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아동문학가이기도 하다. 책 한 권 내는 데도 무수히 망설였다는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시집을 엮으며 나무를 안고 귀를 댄다. 내 글을 새겨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내년 봄에는 나무를 더 심을게.”라고.

‘도롱뇽 알집은 우주 정거장’은 그런 마음을 담아 펴낸 동시집이다. 자전 소설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을 쓴 포리스터 카터가 남긴 말을 가슴에 담고 산다. 카터 작품은 대부분 인디언 생활사를 담고 있다. 그 책에 나오는 체로키 인디언이 남긴 말, ‘숲에서 일어난 일로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는다’.

이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이유가 있다. 경북 영천 보현산 아래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바람과 홍수를 막고 제방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오래전 만들어진 숲인, 이름대로 5리 정도 되는 오리장림(五里長林)에 안겨 살았다. 학교 가는 날보다 숲으로 등교하는 날이 더 많았다. 결석 이유는 ‘학교 빼고 다 학교’인 숲이 가르쳐주는 공부가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이를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결국 운명은 ‘자연’에 의해 다듬어지고 만들어진 셈이다. 이후 모든 일, 특히 이 동시집이 탄생한 계기도 ‘자연을 읽으면 글이 술술 써진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동시집은 산에서 본 곤충을 기록하고 들에서 본 식물, 강이나 갯벌에서 만난 새를 모두 담았다. 그중 한 편을 함께 읽어보자.

‘꽃눈 ‘한개’ 쓰고/ 엔터 치자/ 땡 하며 ‘한 개’로 띄어주는 컴퓨터// 꽃눈 ‘열개’ 쓰고/ 엔터 치자/ 이번에도 땡 하며 ‘열 개’로 띄어주는 컴퓨터// 꽃눈 ‘백개’ 쓰고/ 엔터 치자/ 이번에는 네가 고쳐!/ 빨간 줄 쫙 그어버리네// 꽃눈 ‘천개’ 쓰고/ 엔터/ 이번에는 대꾸도 안 해// 꽃눈 만개/ 엔터/ 어라, 이번에도 말이 없네/ 아하, 꽃눈이 많으니 컴퓨터도 헷갈리지// 만 개일까 만개일까/ 긴가민가하는 사이/벚꽃이 활짝.’ <‘띄어쓰기 잘못하니 꽃이 피었다’ 전부>

꽃이 활짝 핀 상태인 만개(滿開)를 설명하는 한 줄 한 줄이 기가 막힐 정도로 재미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말한 나태주 시인 시, ‘풀꽃’이 어른거린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고 한 것처럼.

총 4부로 구성된 작품집은 방관(傍觀)을 일삼는 독자를 은근히 나무란다. 알고 나면 달라진다는 조용한 가르침이다.

‘밟으면 따가워서/ 따개비라고 하는 건/ 금방 이해가 돼// 그런데/ 굴을 잘 파는/ 게를 놔두고// 왜,/ 굴을 못 파는 굴을/ 굴이라 하지?// 이름이 서로/ 바뀐 건 아닐까.’ <‘바뀐 이름’ 전부>

그는 오래전,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서 살던 때 쇠제비갈매기 집단 서식 과정을 기록, 분석한 바 있고 노랑턱멧새, 논병아리 등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도 했다. 다양한 곤충 생활사를 들여다본 사람이어서 ‘생태연구가’라는 수식어도 어울린다. 현재 올해를 목표로 경남 창녕군 화왕산 자락에 ‘디지털 곤충 학습관’ 개관을 위해 힘쓰고 있다. 스스로 로드스쿨러(Road-schooler)라 칭한다.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학습공간을 넘나들며 자기 주도로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뜻이다.

자연 문법을 익혀 그 말들을 받아먹으며 일생을 가꾸어 가는 사람인 조무호 작가. 그는 벌레와 즐겁게 사는 법을 터득한 이여서 주위에서 그를 ‘헤벌레’ 선생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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