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산 스님의 가슴앓이
운산 스님의 가슴앓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8.1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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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 스님은 봄철만 되면 가슴을 앓는다. 스님이 웬 가슴앓이? 그것도 중생을 제도해야 할 수행자 신분으로 가당치 않은 일이다. 어느 날 필자는 사연을 전해 들고는 무조건 스님을 찾아 나섰다. 안동 왕모산을 찾은 날은 지난 7월 29일이었다. 윤달 유월의 염천(焰天)을 피해 새벽 다섯 시경 ‘내맏이골’ 짙은 안개를 앞세우고 일찌감치 채비해서 떠났다.

왕모산은 해발 648m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에 있다. 6부 능선에 자리한 ‘삼소굴’을 찾기까지 자동차는 오르막에서 단말마 소리를 내며 열기를 내뿜었다. 내비게이션을 덮어놓고 믿었던 탓에 처음 도착한 곳은 엉뚱한 곳이었다. 다시 물어 목적지 근처에 도착한 것이 예정시간보다 무려 한 시간 반이 늦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동차는 목적지 수백 미터를 남겨두고 좁은 길 한쪽으로 기울었다.

할 수 없어 나무 그늘을 찾아 더위를 식히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인적은 없고, 숲속의 수다쟁이 직박구리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왕매미 우는 숲으로 날아갔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함께한 염천은 망자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는 염라대왕처럼 초파리까지 붙여 성가시게 했다. 이윽고 연락이 닿아 마중 나온 스님의 트럭 짐칸을 꼭 붙잡고 한고비를 지나 도량에 도착했다.

스님은 자연스러움을 좋아해 왕모산 토굴에서 자연인으로 농사지으며 동식물과 더불어 생활한다고 했다. 스님에 대한 사전정보는 유튜브에서 알게 됐다. 그는 박새, 딱새, 곤줄박이 등 박새류 텃새와 가까이했다. 차 한잔을 한 뒤 스님이 거처하는 공간환경에서 관찰되고 경험한 딱새, 박새, 곤줄박이, 참새, 구렁이, 물총새, 고라니, 멧돼지, 꿩, 박쥐, 멧비둘기, 어치, 동고비 등 다양한 종의 관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딱새, 박새, 곤줄박이 등 박새류가 알 낳은 자리를 습격해 알과 부화한 새끼를 모조리 잡아먹고 나오는 구렁이를 직접 목격한 것이 가슴앓이의 방점이었다.

짐작이 갔지만 “먼저 현장을 한번 둘러봅시다” 했다. 다시 쉼터에 앉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둘러본 느낌을 크게 둥지 제작의 문제점, 새집 설치 공간의 선택 등 두 가지로 간추려 말했다. 첫째, 둥지 제작의 문제점이다. 박새류는 자연에서 수동(樹洞)이라는 나무의 구멍을 주로 ‘알자리’로 이용한다. 하지만 나무 구멍이라 해도 좁고 깊어야 우선 선택의 대상이 된다. 좁은 구멍과 깊은 알자리는 천적의 공격을 더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이 만든 새집은 똑같이 출입 구멍은 컸고, 깊이는 얕았다.

둘째, 새집 설치 공간의 선택이다. ‘조지장식필택기림(鳥之將息必擇其林=새가 나무에 앉으려 하면, 반드시 그 쉴만한 숲을 선택해야 한다)’이라는 말이 있다. 새집은 구렁이 등 뱀 종류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공간에 설치해야 천적의 접근을 더디게 할 수 있다. 새집을 단 곳은 대부분 뱀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스님은 필자의 설명을 이해했다. 스님의 깊은 산중생활은 자연적으로 동물의 먹이사슬 구조를 형성시켰다. 산중에 사람이 생활하면 식량을 보관하게 된다. 사람의 식량은 쥐의 먹이와 겹치게 된다. 쥐의 출현은 쥐를 먹이로 하는 구렁이가 따르게 된다. 쥐와 구렁이가 사람의 생활 공간에서 쉽게 눈에 띄는 이유이다.

오후 4시경 울산으로 돌아올 채비를 했다. 그는 가슴앓이 해결 선물로 큰 장독 깊숙이 숙성시킨 된장을 망설임 없이 가득 퍼 담아주었다. “또 봅시다” 하며, 뒤돌아섰다. 혹시나 하고 뒤돌아봤다. 역시나 그는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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