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 "키리키리키리키리"
오디션 - "키리키리키리키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8.10 22: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오디션'의 한 장면.

<오디션>에서 영화사를 운영하는 아오야마(이시바 시료)는 홀아비다. 아들 시게이코(사와키 테츠)가 어렸을 때 아내는 병으로 세상을 떴고, 홀로 아들을 키우며 외롭게 살아왔다. 그런 어느 날, 고등학생이 된 아들 시게이코는 설거지를 하는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에 짠해 재혼을 권유하게 되고, 아들의 조언에 문득 자신의 외로움을 깨닫게 돼 재혼할 여자를 찾아보게 된다. 

그 무렵, 아오야마의 친구이자 유명 영화감독인 요시카와(쿠니무라 준)가 재혼을 결심한 친구에게 신박한 아이디어를 하나 내는데 바로 제작 영화의 여주인공을 뽑는 오디션을 가장해 신붓감을 골라보자는 것. 수많은 여성들이 오디션에 지원하게 되고, 마침내 아오야마는 다소 운명처럼 마음에 드는 한 여성을 찾게 된다. 

어릴 때 발레를 했던 아사미(시이나 에이히)는 단아한 외모에 겨우 20대 초반인데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생각이 성숙했다. 그 모습에 반한 아오야마는 그녀에게 조금씩 접근하게 되고, 아사미 역시 아오야마의 친절과 배려에 감동해 오디션 합격 여부를 떠나 그와 가까워지게 된다. 마침내 둘은 함께 여행을 떠나 같이 몸까지 섞게 되지만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시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조금 슬픈 구석이 있긴 하지만 한 곡의 아름다운 발라드(멜로)처럼 흘렀던 이야기는 이제 장르가 서서히 바뀌게 된다. 헤비메탈(공포)로. 

사실 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하면 그 형식은 분명 ‘변주곡’이다. 아오야마와 아사미처럼 시작할 땐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가득 차 온 세상이 아름다운 발라드 선율로 가득 찬다. 허나 그 끝은 늘 잔인하다. 아니, 굳이 끝에 닿지 않았더라도 좋음은 두려움이기도 한 법. 설레고 두근거리던 시절에도 상대방의 말 한 마디나 표정, 혹은 눈빛 한 번으로 좋아하는 마음은 금세 두려움으로 변하곤 한다. 해서 현실에서의 사랑은 필연적으로 발라드(멜로)와 헤비메탈(공포)이 뒤섞여 있다. 전문용어로 '메탈발라드'라고 한다.  

하지만 <오디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후반부에 몰아치는 잔인한 장면들만큼 아주 끝장을 본다. 이 시절(1999년작)의 일본영화가 그렇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본질을 꿰뚫는 작품들이 많다. 
속았다는 걸 알고 마취를 시킨 뒤 줄톱으로 아오야마의 발목을 썰기 전 아사미가 말한다. "오디션을 통해 여자를 잔뜩 모아서, 거기서 호감을 사고, 나중에 따로 연락을 하죠. 결국 섹스가 하고 싶었을 뿐, 모두 똑같아" 남자들 뜨끔하죠? 하긴, 한창 뜨거울 때 여자는 남자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잠이 들 수 있지만 남자는 꼭 싸야만 잠이 드니. 그래도 어쩌겠어요? 종족 번식은 해야죠. 남자들의 그런 욕망이 없었으면 인류는 벌써 대가 끊겨 멸종했을걸요? 무자식이어서 상팔자인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히히.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들 입장에선 그렇다. 그래, 좋다 이거야. 섹스를 향한 남자들의 열정이야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다 이해하니까 나만 사랑하면서 내가 기댈 어깨 하나만 내어주라는 것. 허나 대다수 남자들이 말뿐이다. "평생 너만 사랑할거야"라며 기댈 어깨를 내어주고는 몰래 다른 쪽 어깨를 다른 여자에게 내주기도 하고, 느닷없이 기대고 있던 어깨를 빼는 바람에 "쿵"하고 쓰러지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물(시랑)을 아무리 뜨겁게 끓여도 식는 법. 문제는 결국 남자들의 '말(言)'이 아닐까? 

해서 아사미는 아오야마의 혀에 기다란 침을 수셔넣은 뒤 이렇게 말한다. "말은 거짓이어도 고통은 믿을 수 있어요. 아프니까 잘 알겠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렇다. 메가폰을 잡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영화의 제작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때문에)아픈 여자들을 위한 영화"라고. 그리고 끝 장면에서 아오야마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이런 조언도 건넨다. "아픔이 있더라도 결코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까 다들 사는 거겠죠" 그래도 그렇지, 감독님 너무 잔인했엉. 같은 남자끼리 왜 그래? 

사실 사랑이란 게 그렇다. 남녀 간에 진정한 사랑이 과연 존재할까?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요? 혹시 사랑에 빠져 행복한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건 아니고요?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쉽게 그런 말 하지 마시길.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혹은 강아지가 주인을 사랑하듯 그런 맹목적인(불변의) 사랑이 아니라면 말이죠. (나를 위해)"이러면 안돼", "저러면 안돼", "그래야만 돼"라며 조건이 붙는 사랑을 진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아까 이 시절의 일본영화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본질을 꿰뚫는 작품들이 많다고 했죠? 어쩌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는 점이 이 영화에서 진정 공포스러운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기 전에 봐야 할 최고의 공포영화'라는 수식어가 이 영화에 붙은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아오야마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예쁜 고양이(Kitty)를 부르듯 아사미가 내뱉는 "키리키리키리키리"라는 대사 때문. 그 소리는 예쁘면서 잔인하다. 어쩌면 '사랑의 소리'가 아닐까. 그나저나 여름엔 역시 공포영화다. 싸~하죠? 2023년 4월 19일 개봉. 러닝타임 115분. 

이상길 취재부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