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이 마지막 걸음이라는 마음으로
첫걸음이 마지막 걸음이라는 마음으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8.0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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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서툴지만, 그래도 - 소담쓰담 엮음

‘글은 허기진 삶의 갈증을 채워주는 물’, ‘글짓기를 잘한다는 초등학교 생활통지표를 발견한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면의 성장을 중요하게 여겨 글 쓰는 삶 실천’, ‘글을 독자가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은 힘들었다’, ‘글올 통해 성장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마가렛 미첼과 박경리 소설을 읽으며 작가 꿈을 가졌다’.

이런 말을 남긴 이들은 누구인가? 2023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 프로그램 중 글쓰기 교실에 참여한 이들이 출판까지 한 책, ‘서툴지만, 그래도’에 남긴 소회(素懷)다. 이 작품집에는 단편 소설을 쓴 두 사람과 네 편에서 다섯 편까지 에세이를 쓴 네 사람 작품이 들어있다. 이들은 이제 ‘작가’라는 책임을 짊어진 셈이다. 수업을 지도한 소설가 마윤제 작가는 추천사에서 따뜻하면서도 ‘고난의 행군’이 될 그들 앞날에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두레박’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들이 앞으로 길어 올릴 ‘물’(창작물). 두레박을 사용해본 사람은 안다. 숙달되기 전까지 매번 실패하는 물 길어 올리기. ‘하염없이 내리고 내려 마침내 그것’을 건져 올리는 과정임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가보지 않은 길, 새길, 모험, 불안, 두려움이라는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에 말이다.

참여한 이들은 적게는 3달, 많게는 1년 정도 마 작가와 함께 소설, 에세이 공부를 하며 내공(內功)을 쌓아왔다. 시작하는 이들은 거의 그렇다. 문장은 덜컥거리고 세련미는 없어 보이지만 미사여구라든지 기름기는 싹 빠져 있어 오히려 담백하니 좋다. 되바라지지 아니하고 깊숙하다는 뜻인 ‘웅숭깊다’는 표현이 딱 알맞다.

김다인, 최인숙 씨는 단편 소설을 썼고 윤희, 유경, 조미란, 최수아 씨는 에세이로 채웠다. 참여 작가 모든 작품을 소개할 지면이 부족한 게 아쉽지만 여기서는 조미란 씨 ‘오동나무꽃’과 최인숙 씨 ‘솔과 장미의 나날들’을 잠깐 소개한다.

 

먼저 조 작가 작품을 살펴본다. ‘보라색 꽃이 필 때마다 아버지 얼굴이 생각난다’로 시작되는 첫 문장. 한 가정 주춧돌인 가장(家長)인 아버지 삶을 반추한다. 슬프고 괴로웠던 식구 그늘사(史)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풍비박산(風飛雹散)으로 대변되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遺産)이 오동나무다. 당당했던 젊은 날은 초췌한 얼굴이 되어 늦은 후회를 한다. 손재주가 유난히 좋아 집이며 가구 제작이 능통했다. 어느 날 마당에 놓을 평상 하나를 만들며 틀을 짜는 재료로 오동나무를 선택한다. 가볍고 탄성 좋다는 이유. 그 위 대나무 살로 짠 평상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으리라. 마침내 돌아가시고 병원 앞에서 다시 발견한 오동나무에 핀 꽃. 아버지 존재는 스러지고 마음에 멍울처럼 남아있는 모습이지만 그 나무만 보면 떠오르는 얼굴은 잊을 수 없었으리라.

다음은 최인숙 작가 에세이, ‘술과 장미의 나날들’. 잭 레몬, 리 레믹이 주연을 맡은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젊은 알코올 중독 부부가 처한 비참한 생활을 그렸다. 제목만 빌려 왔지만 소설 속 주인공도 ‘알코올 중독자’다. 그 일상을 천천히 낡은 필름처럼 보여준다. ‘가난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을 열고 도망간다’는 말처럼 사랑도 실패하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치 않은 몸, 이 작품에도 어김없이 가족, 아버지 제삿날을 끌고 가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슬픔은 무너진 둑처럼 겉잡을 수 없이 들이닥치는 법이다. 설상 그 일이 자신이 잘못 처신한 결과였다 하더라도 지나친 음주 행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스스로를 다잡는 방법으로 ‘술’을 택했을 뿐이다. 마지막 맺음도 ‘암전’(暗轉)일 수밖에 없었던 쓸쓸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였다.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작가들 작품도 모두 빼어나다. 가르친 이 역량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가르친 이, 배운 이는 일심동체가 되어야 오롯이 자기 길을 갈 준비가 되는 셈이다. 이 작품집을 엮은 독립서점 ‘소담쓰담’은 읽고 쓰고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지향하는 동네 책방이다.

글쓰기 교실에 참여한 작가에게 부탁한다. 지금 내디딘 첫걸음이 마지막 걸음이라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대들 발걸음을 따라가는 다른 이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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