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의 변화
호칭의 변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8.07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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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포장마차를 찾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즐겨 쓰는 말에 ‘이모’ 또는 ‘이모님’이 있다. 그러나 이 정겹게 들리는 호칭도 언제 다른 말로 바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고용노동부가 얼마 전 국민에게 부탁한 말이 있다.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고 청소, 세탁,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가사근로자를 ‘가사관리사(-관리사님)’란 새로운 이름(호칭)으로 불러 달라는 당부였다. 이를 전하는 뉴스에는 “‘아줌마’나 ‘이모님’이 아닌 ‘관리사님’으로 불러주세요”라는 제목이 달려 눈길을 끌었다.

가사도우미란 직업에 대한 호칭의 변화에는 시대상의 변화도 같이 녹아 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식모’에서 ‘파출부’ ‘가정부’로, 다시 ‘가사도우미’를 거쳐 ‘가사관리사님’으로 바뀌게 됐으니 안 그렇겠는가.

이러한 호칭의 변화를 두고 잘잘못을 따지려는 건 아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은 감출 수가 없다는 심사를 드러내려 할 뿐이다. 어쨌거나 그 이면에는 배려와 존중, 인격적 예우의 마음가짐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게 분명하다. 고용노동부 관계관은 “새로운 호칭을 통해 가사관리사가 당당한 직업인으로 인식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법적 보호를 받든 못 받든 ‘-관리사’란 호칭의 직업은 참 많기도 많다. 농산물품질관리사, 소방시설관리사, 주택관리사, 정원관리사, 물류관리사에다 피부관리사, 산후관리사(산모도우미), 체형관리사가 있는가 하면 ‘스웨디시(Swedish) 관리사’란 것도 있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에도 관리사가 있었을까. 인터넷 바다를 뒤져보니 관리사(管理使)란 벼슬이 나온다. 그 뜻풀이는 ‘조선 시대, 관리영(管理營)의 장(長)으로서 개성 유수(開城留守)가 겸임하던 종이품(從二品)의 벼슬을 이르던 말’이다

시대는 달라도 호칭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직업 명칭이 있다. 바로 ‘간호사(看護師, 영어: registered nurse, RN)’란 호칭으로, 참으로 파란만장한 변천사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조 말인 1903년에는 모두 ‘간호원(看護員)’으로 통했고, 이때 ‘員(원)’은 ‘담당’이란 뜻이었다. 한국 최초의 간호교육기관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1903~1933)’를 설립한 마거릿 에드먼드 여사가 ‘nurse’를 한국어로 번역한 말이 그 효시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는 남녀를 따로 구분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일제(日帝)가 ‘간호부 규칙’을 반포하며 여성은 간호부(看護婦), 남성은 간호사(看護士)로 성별 표현을 따로 분리한 것이다. 이 호칭은 광복(光復) 한 해 전인 1944년 ‘조선의료령’을 반포할 때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 호칭은 광복 후인 1951년, 우리 정부에 의해 맨 처음 호칭인 ‘看護員’으로 되돌려진다.

하지만 1987년에는 선생(스승)을 뜻하는 ‘師(사)’자가 뒤에 붙으면서 지금의 ‘간호사(看護師)로 굳어지게 된다. 간호사 호칭에 대한 논의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고, 1980년 ‘제2회 국제간호학술대회’ 때부터 본격적으로 거론됐으며, 1987년 의료법 개정을 통해 새 호칭으로 자리 잡게 된다.

“언어(言語)는 생물(生物)”이란 말이 있다. 어떤 낱말을 자꾸 써버릇하면 굳어지기 마련이란 것이 그 첫째 뜻이라고 본다. 같은 이치로, 그 낱말을 멀리하다 보면 그 의미도 바래지기 마련이란 것이 그 둘째 뜻이라고 본다. 그리고 호칭의 변화는 시대상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배려와 존중, 인격적 예우가 흠씬 묻어나는 새로운 호칭을 더 자주 만나고 싶은 것이 나만의 소망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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