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의심하는 습관을 들이자!
스스로 의심하는 습관을 들이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7.3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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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를 찾은 때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무심했던 내가, 큰맘 먹고 치과 치료를 다닌 지 벌써 2년째다. 정기검진을 받을 때마다 “쪼개져 남은 사랑니를 발치하라.”는 치과의사 진단을 받아도 깡으로 버텼다. 별로 아프지도 않았거니와 병원 가는 것은 아주 질색이었기에. 특히 치과는 윙윙 돌아가는 그 기계음이 정말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가까운 지인이 얘기를 나누는 도중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아닌가. 그런 광경을 몇 번 목도하곤 술자리에서 솔직하게 물었다. “내가 하는 말이 왜 그렇게 듣기 싫냐?”고. 몇 번을 망설이다가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말할 때 입 냄새가 난다.”는 거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며칠 후 바로 치과를 가서 발치(拔齒)하곤 아직도 임플란트 시술을 받고 있다.

인간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물이다. 이야기는 인류가 찾아낸 가장 효과적인 소통 방법이자,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야기는 인류를 점점 광기(狂氣)로 몰아가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유포할 수 있게 되면서, 이야기가 우리 사회를 양편으로 갈라놓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입 냄새를 스스로 맡기 어렵듯이, 내가 하는 이야기에 과장, 위조, 비논리가 있어도 스스로 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상대방과 거리를 두고 입 냄새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임으로써 불쾌감을 주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의심하는 습관이다.

날이 갈수록 정치적 양극화가 정점으로 치솟고 있다. 왜 그럴까. 개인적 소견으론,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는 정치인들의 날 선 말인 듯하다.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악마화하면서 무책임한 선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이 벌어지게 된 것은 마음을 미혹(迷惑)하는 이야기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통령 선거는 사기’라고 주장하며 지지자들을 현혹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가 제시하는 부정선거 근거는 빈약하지만, 지지자들은 그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고 사회를 갈라놓는 이야기를 재생산한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럴싸한 이야기나 믿고 싶은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다. 아는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는 이야기 역시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 퍼져 나가고, 사회의 균열은 더욱 심해진다. 이른바 스토리텔링 편향에 갇히는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때에도, 스스로 검열하지 않고 집단 다수의 견해에 순응하는 ‘집단 강화의 늪’에 빠지기 쉽다. 각 대안에 대한 충분한 반론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고, 오히려 집단 토론을 통해 기존의 입장을 더 강화한다.

그 결과 극단적 정책이 채택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이 방식은 결국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제 식구 감싸기와 무리한 의제 맞추기, 부정행위 등으로 국회, 정부, 대기업, 연구기관, 종교단체, 시민단체, 언론 등 그 어느 조직 하나 과거의 신뢰를 유지하는 곳은 없어 보인다. 한국사회가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이렇듯 같은 편만 보는 정책으로는 미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정책결정자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계획의 완성도 및 성공 확률을 과대평가하는 낙관적 편향을 보인다. 대부분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같은 소리라도 평소의 신념이나 정서에 따라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듣는다. 귀로 들어오는 소리를 우리 뇌가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았던 소리조차 들린 것처럼 착각할 때도 있다. 얼마 전 ‘명확하게 들리지 않은 부분이 어떤 말이냐?’를 놓고 정쟁(廷爭)이 일어난 건 물론이고, 온 국민이 청력까지 시험한 일을 기억하는가. 청각적 착각인 착청(錯聽) 현상이다. 각자의 지식, 신념, 예측이 만들어낸 언어의 착청을 유령어(幽靈語)라 부르기도 한다. 각자 믿는 진실은 다를 수 있다. 오늘도 “절대 오만해지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4차산업혁명 U포럼 위원장·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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