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을'이면 교육은 없다
교사가 ‘을'이면 교육은 없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7.2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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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그만큼 속 썩을 일이 많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맹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을 ‘군자삼락(君子三樂)’의 세 번째로 꼽았다. 선생과 기자, 경찰이 같이 술자리에 앉았는데, 아무도 계산을 하지 않자 주인이 돈을 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모두 대접받는 데 익숙한 세 직업군을 비꼰 이야기인데, 교사도 그중 하나였다.

산업 현장이 고속성장을 할 때 나는 교단을 지키면서 겨우 밥 먹고 살았다. 그 무렵, 학부모들은 대개 교사들을 깍듯이 예우했다. 1997년 연말에 IMF가 터지면서 대량 해고사태가 일어나자 친구들은 교직에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때부터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조차 교대로 학사 편입을 하는 등 좋은 인재들이 교단으로 몰려들자 나도 우쭐하면서 후배 교사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어느 땐가부터 교실이 걱정된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교내에서 한 새내기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져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 교사로서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 지경이 되도록 교육행정 당국은 무엇을 했나?”, “교장이나 교감은 왜 도움을 주지 못했나?”, “많은 교사들이 왜 현장을 찾아가 슬퍼하며 공분하고 있을까?”, “정말 학생 인권이 교권 침해로 변질되었을까?” 하는 등의 의문이 꼬리를 문다.

해당 학교 담장은 수많은 조화와 메모지로 뒤덮였다. 어느 교사는 ‘나도 자살할 뻔한 교사’라며 우울증 걸린 채로 살아간다는 사연을 적어놓았다. 또 한 사람의 메모를 보자. “선생님 저는 7년차 교사입니다. 저도 수없이 무너져 내리고, 다시 저를 끌어올리기를 반복하며 버티고 있지만, 오늘 일이 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빨리 움직이지 못해 죄송합니다.” 벽에는 이런 문구도 적혀 있다. “교실을 구해라. 교사를 구해라. 더 많이 죽기 전에.”

교사들이 어떤 고통에 처해 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마녀사냥을 당했던 수많은 교사의 커밍아웃 성격이 짙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동료 교사들은 평소에 학부모들의 민원 제기가 유난히 많은 학교라고 말했다. 또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 원인을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양쪽 학부모의 문제 제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애들 케어를 어떻게 하는 거냐?, 교사 자격이 있나?”라는 등의 막된 표현이 있었다는데, 이건 정말 심각한 언어폭행이다.

과거에 일부 교사들이 갑질을 하던 때가 있었다. 대표적인 게 체벌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리에 통제 불능의 학생과 일부 학부모의 갑질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과거 교사의 갑질보다 훨씬 더 큰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교실이 이래서는 안 된다. 아이들 교육에 누가 갑(甲)이고 누가 을(乙)이라니…. 나는 교직을 수행하면서 한 번도 내가 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아이라도 ‘가능의 씨앗’으로 보려고 노력했지만 적잖은 잘못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교사가 ‘을’이 되면 교육은 없다. 수많은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직접 민원에 노출되어 있다. 이를 막지 못하면 교사들은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을’의 신세가 된다. 과거에는 교사의 잘못에 대해 대체로 너그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이 안 된다. 반면에 학생의 그릇된 언행은 점점 더 제재하기 어렵다. 여기에 학부모들까지 가세하면 학생들은 더욱더 방종하게 된다. 학부모들은 이제 내 아이만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개념을 바꿔야 한다.

울산교육청 자료에 의하면 최근 3년간 239건의 교권 침해가 있었다. 모욕과 명예 훼손, 업무 방해, 상해와 폭행, 성적 굴욕감, 부당 간섭 등 대부분이 학생들에 의한 것이지만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사례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교권 침해 통계에서 보듯 교권을 자꾸 위축시키면 학교 교육은 무너지고 만다. 벼랑에 선 교사들은 이번 주말에도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교사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보니 기가 막힌다.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이정호 수필가,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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