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현대차 노사 TFT
뜻밖의 현대차 노사 TFT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7.26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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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라 하면 여전히 ‘대립’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게 현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해마다 진행되는 임금 및 단체교섭 테이블에서 노사가 마주 보며 서로 으르릉대지만 그래봤자 교섭이 타결되고 나면 한때 불편했던 노사관계는 금세 사라지고, 그 회사의 이름에 묻혀버린다. 그리고는 서로 회사의 발전을 위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열심히 달려간다. 때문에 노사관계란 어찌보면 잠시 잠깐 생겼다가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지 않을까.

물론 그해 교섭이 길어지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화가 난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될 땐 이런 철천지원수 사이도 없다. 정말이지 그때는 노사관계라는 신기루가 오히려 현실을 덮어버리게 된다. 노동 기자를 오래 하다 보면 그런 광경을 심심찮게 보곤 하는데 최근에 현대자동차 노사의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많이 느낀다.

단일 회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직원 수를 자랑하면서 과거 정리해고 투쟁 등을 거치며 이른바 ‘터프함’의 대명사였던 이 회사의 노사관계는 최근 들어 크게 달라진 모습으로 좌중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니까 과거의 대립적 노사관계에서 벗어나 협력적 노사관례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까지 4년 연속으로 무분규 타결을 이뤄낸 것도 그러한데 올해는 교섭이 계속 진행 중인 상황에서 노사가 협력해서 뜻밖의 TFT(Task Force Team)를 구성키로 한 것이다.

이른바 ‘저출산/육아지원 노사 TFT’(이하 TFT)가 그것으로 요는 현재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저출산 문제에 대해 노사 차원의 대책을 모색하고 직원들의 생애주기(결혼-임신-출산-육아-취학)에 기반한 종합적인 출산 및 육아 지원 방안을 함께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노사가 합심해 올해 단체교섭 요구안으로 ‘저출산 대책’을 논의하게 됐다는 점. 특히 노조가 단체교섭 요구안으로 임금인상이나 처우개선 같은 자신들만의 욕망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사측과 함께 모색하게 된 것도 이채로운데 그걸 위해서 노사가 함께 TFT까지 구성한 건 국내 대기업 중 최초라고 한다.

근데 이게 단순 보여주기식에만 그치지 않는 게 TFT 첫 행보로 현대차 전주공장에 근무 중인 8자녀 직원 가족을 비롯해 사내 다자녀 가족들을 방문해 면담한 뒤 다자녀 출산 및 육아에 따른 고충과 건의사항 등을 청취해 단체협약에 반영하겠다고 하니 기존의 일방적인 요구에서 벗어나 노사 간 단체협약과 관련해 새 지평을 열게 될 것 같은 기대감마저 든다. 과거 그렇게도 많이 싸우더니 이젠 노사관계란 게 한 줌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걸 서로가 안 것일까?

십여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미생>이란 드라마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원 인터네셔널’이라는 대기업 무역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장그래(임시완)는 수익은 확실하나 사내 비리가 터져버려 모두가 꺼려하는 요르단 중고자동차 사업을 다시 하자는 충격적인 제안을 하게 된다. 이에 상사인 오상식(이성민) 차장은 “비리는 걷어내고 사업만 보자”는 마인드로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사장을 비롯해 회사 고위 간부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요르단 중고차 사업에 대한 파격적인 PT(프리젠테이션)로 그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긍정으로 바꾼다. 관례상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에 사장(남경읍)은 장그래에게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고 묻는다. 그러자 장그래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회사니까요.” 맞다. 해마다 교섭 때면 잠시 지지고 볶고 싸우지만 결국 ‘우리 회사’인 거다.

이상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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