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아프다
선생님도 아프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7.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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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선생님들 단톡방에서 허망하고 참담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2년 차 선생님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다. 교사가 된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그토록 힘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 선생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최근 뉴스에 나오는 황당한 떼쓰기 수준의 민원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특정한 학교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비슷한 수준의 민원 이야기들이 주변에서 조금씩 들려오기 때문이다. ‘딸기우유에 생딸기를 넣지 않았다’, ‘아이의 인사를 정겹게 받아주지 않는다’, ‘교실에서 커피를 마신다’ 등 대부분 학부모와는 관계없는 일이지만 이런 일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생각이 든다.

관련 기사를 보면서 며칠 전 선생님들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예전에는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지가 주된 고민이었다면 요즘에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는지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즐겁고 좋을 수는 없다. 때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힘들거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데 잘못에 대한 지도 과정에서 아이가 기분이 나쁘면 학대가 될 수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해도 학교로 경찰이 출동하기도 한다. 당연히 처벌사항이 아니기에 경찰들은 되돌아가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런 민원과 신고가 학부모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상처가 되고 교사를 점점 더 위축시킨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기분과 관련 없는 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는 모든 잘못을 징계와 같은 절차를 통해 처벌하는 것이 가능한지, 교육적인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교무실이나 상담실로 따라오라는 교사의 지시를 못 들은 척했다고 아이들에게 징계를 줄 수 있을까? 실제로 이런 일로 징계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잘못에 대해 징계를 주는 것은 교육적 효과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법을 무시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듯 아이들이 교칙과 징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면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징계와 훈육의 적절한 조화가 있어야 한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교육활동 침해 예방 및 대응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서 교사의 생활지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올해 6월에는 학교장이나 교사가 학업이나 진로, 인성·대인관계 분야에서 학생들을 훈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에 따르면 학교의 장과 교원이 학업 및 진로, 보건 및 안전, 인성 및 대인관계 등의 분야와 관련해 조언이나 상담, 주의,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

교육부는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더 구체적 사항은 앞으로 관련 정책연구, 현장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지침을 마련해서 고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 지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의견 수렴을 넘어 현장 선생님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정책이 마련되더라도 그 정책이 집행되는 교실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입안한 것들은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잘못된 부분이나 학교에 건의할만한 일이 있으면 합리적 방식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러한 의견 표명 방법은 공적 과정과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전화를 걸어 불만의 감정을 표현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 절차를 통해 의견과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교육적 관행은 근절되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분별한 민원에 교사가 바로 노출되면서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선생님도 사람이고, 아프기 때문이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선생님께 마음 깊이 애도를 표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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