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舌禍)의 후유증을 딛고
설화(舌禍)의 후유증을 딛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7.20 21: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 치 혀를 조심해라.” 옛 어른들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그러나 이 금쪽같은 조언도 한쪽 귀로 흘려버리면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가 되고 만다. 자존심이 세거나 권력에 맛 들인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짙다.

여당 윤리위원회가 육모방망이를 빼 들었다. 김기현 대표가 지난 18일 당에 진상 파악을 지시한 뒤의 일이다. 그 대상은 공교롭게도 ‘폭우 속 골프’와 그 뒷말로 구설에 오른 같은 당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홍 시장’ 하면 천하가 다 아는 ‘입심 계의 대부’ 아닌가. 도대체 홍 시장의 어떤 언행이 당 지도부를 그토록 화나게 했던가. 뉴스를 추적해보자.

사단은 지난 15일 오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15일 오전’이라면 집중호우로 전국에서 인명피해가 잇따르던 시간대다. 홍 시장은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대구 팔공CC에서 측근들과 골프를 치다 1시간이 조금 지나 골프채를 내려놓았다. 유명인사의 눈에 띄는 우중 행보를 언론 매체들이 가만둘 리 없었다. 이 특종거리는 이내 전파를 탔고, 이어진 것은 비우호적 여론이었다.

일련의 흐름은 자존심 강한 홍 시장의 심기를 뿌리째 건드려놓았다. “주말에 골프를 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어디 있느냐?” “대통령 외 공직자들의 주말은 비상근무 말고는 자유다”, “공무원들에게 비상근무를 지시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이 말은 ‘가짜뉴스’라는 지적을 받았다. “홍 시장이 골프를 친 시간 대구는 공무원 비상근무 제2호가 발령된 상태였다. 비상근무 2호 때는 소속 직원은 연가가 중지되고 전 직원의 20% 이상이 비상근무를 하게 되어있었다.” 한 매체의 기사다.

이틀 뒤(17일) 그가 국회 기자들에게 한 말은 또다시 논란에 불을 붙인다. “쓸데없이 트집 하나 잡았다고 벌떼처럼 덤빈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기죽고 ‘잘못했다’고 그럴 사람인가. 나는 그런 (부적절한) 처신, 한 일이 없다.” 그러면서 SNS에는 “그래도 기차는 간다”고 적었다.

이때만 해도 그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그러나 싸늘한 당내 분위는 녹을 기미가 안 보였다. 연합뉴스가 그런 분위기를 전했다. “복수의 친윤 핵심 인사들은 ‘오만하고 부적절한 모습이다’, ‘사태를 스스로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홍 시장은 곧바로 자세를 고쳐 잡는다. 다급해진 것이다.

원내대표를 찾아간 데 이어 19일에는 기자실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수해로 상처 입은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그러면서도 그는 할 말은 했다. 재난대응 매뉴얼에 어긋나는 일은 없었고, 15일 오전 대구에는 비가 오지 않았으며, 행정부시장이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총괄 관리하고 있었다고 해명한 것이다.

당 윤리위 소집은 ‘징계수위 결정’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윤리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는 관심이 없다. 물 문제에 대한 홍 시장의 태도가 어떻게 변할지, 그것이 더 큰 관심사다. 그의 말 한마디가 울산시민에게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탓이다.

그는 지난해 경북 구미 해평취수원의 물을 대구로 끌어오는 문제로 김장호 구미시장과 자존심 대결을 벌이다 갑자기 접은 일이 있다. ‘대구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의 논의 대상을 권기창 안동시장으로 바꾼 것이다. 이 때문에 어렵사리 합의한 정부의 ‘물관리종합대책’은 끝내 표류하게 되고, 청도 운문댐 물에 희망을 걸던 울산시의 희망도 덩달아 물밑으로 가라앉고 만다.

홍 시장에 대한 울산시민의 기대가 완전히 식지는 않았다. 시민들은 그가 설화의 후유증을 딛고, 잠시 가라앉았던 맑은 물에 대한 기대를 다시 물 위로 끌어 올려 주기를 바라고 있다.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