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디아나 존스:운명의 다이얼’
영화 ‘인디아나 존스:운명의 다이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7.1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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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흔하디 흔해 가히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영화는 아주 귀한 매체였다. 그땐 영화관에 가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다는 건 1년에 한두 번 정도 있는 이벤트였고, 해서 그 시절 우린 주로 작은 TV브라운관을 통해 영화를 접하곤 했었다.

K본부의 ‘토요명화’와 ‘명화극장’, M본부의 ‘주말의 명화’가 그것으로 주로 주말과 휴일 늦은 시간대 그 프로들에서 방영됐던 작품들을 통해 영화와 친해질 수 있었다.

헌데 그런 영화 방영 프로들을 통해 매주 접할 수 있었던 작품들 속에 소위 ‘블록버스터’라고 불릴 만한 작품은 잘 없었다. 다시 말해 드라마 장르의 잔잔한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아마도 그런 작품들의 방영 판권이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인 듯한데 문제는 세상 물정에 아직 어두운 그 시절의 우리가 즐기기에 그런 작품들은 무리가 있었다는 것. 해서 당시 우린 명절만 되면 TV에서 봇물처럼 쏟아졌던 ‘명절특선영화’를 많이 기다렸고, 그렇게 해서 보게 된 작품 중에 하나가 바로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의 시작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81년작 <레이더스>였다.

제 또래라면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어드벤처 무비의 시조격인 <인디아나 존스>시리즈가 그 시절의 우리들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모험’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심어 줬다는데 있지 않을까. 그랬다. 고고학자인 인디(해리슨 포드)가 갖가지 신비로운 유물들을 악당들보다 먼저 찾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펼치는 모험은 분명 현실 저편 너머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어린 나이에 자고로 ‘모험’이라 하면 저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이 말인 즉은 내가 살면서 모험을 겪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감히.

<인디아나 존스:운명의 다이얼>을 봤던 그날, 이젠 여든을 훌쩍 넘긴 노쇠한 인디가 처음부터 등장할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영화가 시작된 뒤 20분 정도의 시간 동안은 CG(컴퓨터 그래픽) 처리를 통한 소싯적 젊은 인디가 독일 나치에 맞서 유물을 지키는 장면이 흘러나오더라. CG로 커버를 했든 말든, 그 인디는 분명 어릴 적 TV브라운관을 통해 처음 만났던 <레이더스>의 인디였는데 어찌나 반가운지 주름살이 거의 없는 그의 모습에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빠져나온 뒤 젊은 인디에 대한 뜻밖의 반가움을 기억하며 지금껏 내가 겪어온 나름 굵직했던 모험들이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친구들과 동네 뒷산에서 뛰어 놀다 다친 일, 그때 무릎이 움푹 패일 정도로 찢어져 병원에서 생애 처음으로 바늘이 살 속을 파고들며 꿰맸던 일, 엄마 몰래 집 천장에 살고 있는 도둑고양이 새끼를 입양해 학교 급식 우유를 몰래 먹이다 들켜 새끼 고양이 품에 안고 집에서 쫓겨난 일(아주 잠시), 친구랑 치고받고 싸우다 쥐어 터져서 분에 차 씩씩댔던 일, 고등학생이 되어서 학폭을 당한 뒤 우울증에 잠시 빠졌던 일, 일제 워크맨 싸게 사러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 깡통골목을 찾았다가 전화로 대학입시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던 일, 그래서 자갈치 시장 앞바다를 하염없이 내려봤던 일(뛰어내릴 생각 따윈 아예 없었고 드라마에서처럼 폼만 잡아 봤던 거임), 재수해서 대학갔던 일, 대학 들어가서 첫사랑에게 대차게 차였던 일, 전자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와 <킹 오브 파이터> 게임에 빠져 잠시 협객으로 살았던 일, PC게임 <스타 크래프트>에 빠져 전장을 누비고 다녔던 일, 군대에서 줄빠따 맞았던 일, 제대했던 일, 고시 공부 접고 취업했던 일, 생애 처음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았던 일(비수면으로), 회사를 그만둔 뒤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던 일, 그래서 소주가 달아지기 시작했던 일. 서울 종로 바닥에서 노점을 잠깐 했던 일 등등. 참고로 난 올해 딱 반백살(50)이다. 정부 지원으로 이 영화의 개봉일인 지난달 28일부터 한 살이 까이면서 다시 마흔 아홉이 되긴 했지만.

아시다시피 <인디아나 존스:운명의 다이얼>은 시리즈 마지막 편이다. 더 이상 찍고 싶어도 인디 역의 해리슨 포드가 너무 노쇠해 불가능해 보이더라. 여든을 넘긴 나이에 꾸부정하게 뛰는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지만 대미를 장식하는 시리즈 마지막 편이 딱 내 나이 반백살 때 개봉을 해서 개인적으로는 나름 의미가 있었다. 인디와의 작별인사와 함께 내 반백살 동안의 모험과도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듯 하니까. “굿 바이 인디, 굿 바이 반백살”

그리고 난 이제 새로운 모험을 위해 쉬는 날인 오늘(7월 14일) 다시 대왕암공원으로 아침 산책을 나가련다. 비가 오든 말든. 산책이 무슨 모험이냐구요? 아니, 산책하다 멧돼지라도 만나면 어쩌려구요? 뭐 어쩌긴 어째. 열라 튀어야지. 인디처럼. 암튼 저의 모험은 계속돼요. 어차피 인생이란 매 순간이 모험의 연속이니까. 2023년 6월 28일 개봉. 러닝타임 154분.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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