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 ‘사는 게 왜 고단한가?’ 했더니
- 275- ‘사는 게 왜 고단한가?’ 했더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7.1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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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떠들썩한 ‘정명석’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 아득한 기억에서 급소환됐다. 당시의 초등학교는 남녀학생이 같은 반이었는데, 그때 담임선생님의 여학생 추행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 신체검사를 핑계로 남학생들은 다 내보내고, 여자애들의 상의를 탈의하게 해서 즐기던 자다. 수시로 여자애들을 뒤에서 껴안기도 하고, 수염이 까칠한 얼굴로 여자애들의 얼굴을 비비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반장이었는데,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에 여러 번 대놓고 반감(反感)을 보였다. 그런데 결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다. 필자는 반을 대표해서 전교회장에 출마했고, 아쉽게도 선거에서 떨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평소 필자를 고깝게 보던 담임선생이 갑자기 “지금 반장은 전교회장에 나가서 떨어졌으니 새로 반장을 뽑아야 한다.”는 거였다. 당연히 필자는 피선거권도 박탈당했다.

서울로 대학진학을 했던 1980년, 전두환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을 때다. 당연히 저항했고, 거의 매일 시위에 참가했다. 명찰이 안 보이게끔 교련복을 뒤집어 입고 종로로 남대문으로 서울역으로 시위대를 따라다니며 매캐한 최루탄을 들이마셨다. 이렇게 1학기를 마치고 2학기가 되자마자 소위 ‘운동권 써클’에 가입했다. 시위하면서 생긴 이념(ism)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 했다. 우선 여러 권의 진보주의 관련 서적을 읽고 정신을 개조하는 교육이 있었다. ‘자본론’, ‘지식인의 변명’, ‘해방 전후사의 인식’ 등이 기억난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분야의 많은 서적을 읽어서인지 이런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어도 ‘같은 사실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어, 토론장에서도 그 책들이 주장하는 사조와 다른 사상을 언급하며 반론을 제기하곤 했다. 자꾸 그러다 보니 써클 내에서도 ‘요주의 인물’이 되었고, 결국 일 년을 못 넘기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써클을 나오게 되었다.

또 이런 일도 기억난다. 박사학위를 받고 잠시 방황할 때가 있었다. 좀 기다렸다가 전에 다녔던 대전의 국책연구소로 갈까, 아니면 수도권의 공기업 연구소로 갈까 고민했다. 당시 갓난아기도 있다 보니 분윳값이 절실해서 당장 오라는 공기업 연구소로 진로를 정했다. 당시 공기업에서 필자에게 오라고 손짓했던 분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는데, 이른바 ‘패권정치’를 추구하던 분이었다. 즉 주변에 최측근들을 포진시키고 말을 잘 들으면 대우해주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팽(烹)해버리는 그런 분이었다.

그분이 학교 선배이기는 했으나, 필자의 성격상 그의 가신(家臣)이 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와 대척점에 서게 되면서 필자의 입지는 무척 좁아졌다. 그러나 그리 잘 나가던 그분도 각종 감사에서 얻어터지면서 중징계를 받고는 연구소의 한구석에서 백의종군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그분을 추종하던 가신들도 하나둘 곁을 떠나버리는 게 아닌가. 필자는 그때 찾아가서 진심으로 위로해주면서 둘도 없는 형제가 됐다.

요즘 유행하기도 하고 일부 기업에서는 정식으로 사용하는 것 중에 ‘MBTI’란 게 있다. 성격유형을 검사하는 도구인데, 재미 삼아 몇 번 해봤더니 전부 ‘INFJ’가 나왔다. INFJ 유형은 한마디로 ‘세상에 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이상주의자’라 한다. 자찬하는 건 아닌데, 필자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남을 음해하거나 해코지한 적이 없다. 늘 ‘내가 손해 보고 말지!’라는 자세를 견지했고, 모두가 같이 잘 되기를 바라며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이런 자세가 사업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여태껏 안 망하고 버텨온 게 참 대견하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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