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의 달내(達川) 마을 이야기
그 옛날의 달내(達川) 마을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7.0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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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유사한 낱말로는 ‘일장춘몽’이 있고, <인생이란 꿈이라오>라는 노래도 있다. 인생은 아득한 길이지만 한갓 꿈과 같이 허무하다는 뜻이다.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전쟁터로 내몰렸던 어른들도 있고, 오직 외길을 걸으면서 남다른 업적을 이룬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의 자서전 써주기 사업을 울산 중구청에서 하고 있다. 우연히 시민작가로 참여하면서 아직 대면한 적도 없는 또 다른 한 사람을 추천하였다.

그녀는 내가 살고 있는 북구 달천동 출신이다. ‘달내마을’이라고 불렀던 시절에 그곳에서 나고 자라 스무 몇 살에 시집을 갔다. 그녀가 고향 이야기를 담은 책을 냈다는 소식을 접하고 수소문했더니 어찌 알고 그 책을 우리 집 우체통에 꽂아두고 갔다. 내 고향 이야기인 양 잔뜩 몰입하여 읽어가면서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그는 마음속이 이미 ‘글집’이 있었는지 향수를 절절하게 풀어놓았다. 자기 이야기가 이 정도면 자서전도 잘 쓸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참여하는 시민작가는 구술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경청과 공감은 기본이다. 사람에게는 물론 사물에도 감정이 쉽게 이입될수록 좋은 작가가 된다. ≪달내의 사계≫를 쓴 작가는 실제로 경험했거나 듣고 보아왔던 이야기를 그녀만의 표현 방식으로 글을 썼다. 사라져가는 입말들을 많이 되살리고 있어서 아주 맛깔스러웠다. 순수 우리말들도 책 전체에 걸쳐 귀하게 나타나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사투리로, 혹은 거세거나 큰말로 곧잘 나타낸 예를 일부 들어본다.

“잿간이 있는 오두막집이 외양이 낡았지만 깨끔했다, 종다리가 종잘거리고 작은 나비도 원을 그리며 노랑꽃이 핀 배추밭에 맴돈다,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모내기철이 되면 앵두가 익는다, 논 물꼬에 개구리밥과 생이가래가 떠다닌다, 오막단지에 소금물로 풋감을 삭힌다, 나뭇가지가 자늑자늑 흔들린다, 여름이면 개울에서 잘바닥거리며 놀았다, 하늘이 끄느름하다가 빗방울이 빗금으로 뿌린다, 가을바람에 오동잎이 너푼너푼 떨어진다, 물새들이 물낯에서 유희를 즐기고 있다….”

그가 복원한 그 옛날의 달내마을 모습 대강은 이렇다. “마을은 먼 산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편편한 산마루에 오르면 평온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훌빈한 산잔등에 달라붙은 듯 자라는 잔솔과 망개넝쿨이 뜨문뜨문 있었다, 사방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잠잠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양지바른 산 끝머리에는 그럴싸한 묘비가 늘비했다, 생에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면 그건 안태고향이다, 깨복쟁이 친구가 있어서 따스함을 더한다….

그가 표현한 달내마을 사계절의 변화를 살펴보자. “송홧가루가 몇 차례 요동치고 나면 봄이 밀려난다, 논 가장자리의 뚝새풀과 언덕배기 억새는 무더기로 맞자란다, 소만에 이르면 바야흐로 여름이다. 때죽나무는 오밀조밀 매달린 하얀 꽃은 고결하고 청아하다, 해가 저물면 개구리 노랫소리가 분주하다, 입추에 접어들면 조석으로 선선해진다, 밤공기에 실려 오는 풀벌레 소리는 처량하고 애처로워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 일쑤다, 겨울밤이 깊어지면 배가 출출해진다….”

글의 백미는 친정엄마 이야기에 있다. 옷매가 곱던 엄마는 손바람도 좋아 고배상 차림이며 이바지 음식을 잘하셨단다. 그런 어머니가 짱배기가 벗겨지도록 물건을 여다 팔아 아홉 자식 거두느라 속 빈 고동이 되었단다. 어머니가 자주 읊던 말들도 잊지 않고 적었다. “나무도 고목 되면 오던 새도 아니 온다, 머리 검은 짐승은 남의 공을 모른다, 소와 남자는 잘 챙겨 먹여야 한다, 제삿밥을 고봉으로 가득 담아야 자식들이 겉바람이 들지 않는다….

‘자전적 에세이’를 낸 그 옛날의 달내마을 처녀는 이제 고희를 넘겼다. 남은 생애 동안 글벗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가 차용했던 낱말들을 나열해본다. ‘에움길, 뭇별, 개똥장마, 웃기떡, 꿉은 떡, 주악, 곱치기 보리밥, 웁쌀, 장리쌀, 감또개, 물두멍, 가람옷, 무싯날, 새벽 댓바람, 희붐한 첫새벽, 볕기가 고루 퍼진 날, 고두밥과 고슬밥, 눈썰미와 일머리, 단죽과 각연초, 까꾸리와 깔비, 성깃성깃, 새득새득, 어금버금, 물색없는 소리, 깨작거리다, 추레하다, 데데하다….’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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