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래시’ 슈퍼걸, 멀티버스 그리고 메시지
영화 ‘플래시’ 슈퍼걸, 멀티버스 그리고 메시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6.2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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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물론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개봉 전 시사회를 통해 먼저 본 유명 영화 유튜버들의 “마블은 가고 DC시대가 도래했다”는 극찬 속에서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게 문제였다. 또 개인적인 편견도 한몫을 했는데 난 아직도 2016년작인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과 2021년 공개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가 DC의 본질이자 지향점이라 생각하고 있다. 무거우면서 진중하고, 어두운. 그러니까 가볍고 경쾌하고 알록달록한 마블과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해서 영화 <플래시>에 대해 컸던 기대가 꺾인 터닝포인트는 의외로 일찍 찾아왔다.

영화가 시작되고 잠시 뒤 주인공 플래시(에즈라 밀러)는 무너져가는 병원에서 자신의 능력인 빛의 속도로 달려 빌딩 밖으로 추락하는 신생아들을 구한다. 누가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명장면이지만 사실 이 장면은 마블이 2014년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플래시와 같은 능력을 지닌 퀵 실버(에반 피터스)를 통해 스크린에 먼저 구현했었다. 포맷(형식)이 사실상 같아 다소 식상했던 것. 남들이 감탄할 때 그런 느낌이었으니 이후부터는 별 기대를 안 하게 되더라. DC답지 않게 자꾸만 웃음을 유발하려고 유머코드를 집어넣은 것도 다소 억지스러워 보였고. 잠시 뒤, 원조 배트맨(마이클 키튼)이 등장했을 때도 반가움 뒤로 개인적으로는 배트맨의 감정선이 다소 어색해 큰 감흥을 못 느꼈다.

헌데! 슈퍼걸이 등장하면서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그랬다. <플래시>에는 대략 3가지 정도의 어마어마한 매력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새로운 슈퍼걸과 멀티버스, 그리고 메시지가 그것. 이것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전까지 존재했던 금발의 슈퍼걸은 솔직히 흑발의 슈퍼맨과는 왠지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무슨 바비 인형도 아니고. 바비 인형이 왜 날아다니는데?

하아. 근데 이번 라틴계 흑발의 슈퍼걸은 흑발의 슈퍼맨과 혈통적으로도 어울렸고, 파워풀하고 볼륨감 넘치는 피지컬에 특유의 반항기와 퇴폐미는 그냥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더라. 배우 이름도 어쩜 사샤 존예(열라 예쁨), 아니 ‘사샤 카예’일까. 네네. 정신차리께요.

다음으로 멀티버스(Multiverse:다중 우주). 마블이 이미 2021년 말 <스파이더맨:노웨이 홈>을 시작으로 멀티버스를 <어벤져스>시리즈에 담아내기 시작했지만 <플래시>를 통해 구현된 DC의 멀티버스는 복잡했던 마블과는 달리 간단 명료하게 표현돼 좋았다. 특히 후반부에 빛의 속도로 달리는 플래시 주변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다른 우주들은 멀티버스를 마치 도식으로 표현한 듯 해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아프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이걸 이해하려면 플래시의 아픈 과거를 알아야 하는데 그는 어릴 적에 토마토 소스 때문에 엄마를 잃고 만다. 아들에게 맛있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해주고 싶었던 엄마는 마트에서 재료를 사면서 하필 토마토 소스를 빠뜨렸고, 그 때문에 아빠가 대신 마트에 가게 된다. 그런데 그 사이에 강도가 집에 침입해 엄마를 살해하고 말았던 것. 게다가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강도의 칼에 찔린 엄마를 살피다 살인 누명까지 덮어쓰게 돼 지금 재판 중이다. 해서 플래시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라 빛의 속도로 달려 시간여행을 감행하게 되고, 과거로 돌아가 아픈 과거를 바로 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 일로 우주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멀티버스가 열리게 된다. 그러니까 플래시는 과거를 바로 잡은 게 아니라 그저 엄마가 죽지 않은 다른 우주에 가게 됐던 것 뿐. 게다가 그 우주는 비록 엄마는 살아 있었지만 지구를 침입한 크립톤 행성의 조드 장군에 의해 인류가 멸망하게 되는 세상이었다. 플래시는 또 그걸 바로 잡으려고 계속 과거로 뒷걸음질치게 되는데 그걸 안타깝게 지켜보던 네티즌 S씨는 이 영화의 네이버 평점에 이런 명언을 남긴다. “과거의 비극에 얽매인 채 뒤를 향해 달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짊어지고 앞을 향해 달려야 한다.”

맞다. 세상에 슬픔을 짊어지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어차피 슬픔은 태양이 존재하기 때문에 당연히 생기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러니까 살아 있기 때문에 당연히 내야 하는 세금 같은 게 아닐까. 해서 그 슬픔을 짊어지고 오늘도 앞을 향해 달려야 하는 수많은 인생들에게 영화 <플래시>는 이런 메시지를 날린다. “파이팅” 2023년 6월 14일 개봉. 러닝타임 144분.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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