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터지는 교사
등 터지는 교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6.2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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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행평가 점수를 입력하고, 기말고사 시험도 진행해야 한다. 학기를 마무리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교육행정 업무의 대부분은 나이스(NEIS)로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나이스 즉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 이 시스템은 공문서 작성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교육행정 정보를 처리한다. 나이스에 접속하면 교사들에 대한 정보부터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평가, 성적, 진로 진학지도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전자 학생생활기록부쯤 될 것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나이스는 2010년에 개통한 3세대였다. 교육부는 시스템 개선의 이유로 장비 노후화와 2025년부터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적용을 들었다. 3세대 나이스가 스마트폰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던 점도 개선의 이유였다고 했다. 필자는 4세대 나이스의 개발 이유가 선생님들의 업무 경감과 이용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본다. 

교육부는 4세대 나이스 시스템을 2천824억 원을 들여 2020년부터 개발했고, 지난 21일 오전 6시에 개통했다. 하지만 새로운 나이스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학교 현장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선생님들이 처음 문제를 제기한 것은 ‘적용 시기’였다. 왜 시스템을 학기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바꿔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교육부는 대입 수시전형이 9월부터 시작되고 생활기록부 등 대입 전형 자료 생성에 문제가 없는지 검증하는 시기가 7월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학기 초는 학교 인사이동 등이 있어서 나이스 시스템을 지금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스템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오류가 발생했다. 필자도 학기 말 학생들의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과 창의적 체험활동을 입력하려 했으나 주변 선생님들이 입력하면서 뭔가 잘 안 되는 것을 보고 입력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스템이 안정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큰 문제가 터졌다. 

이 시기에 나이스로 처리해야 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이다. 학생들의 한 학기 수행평가 점수를 입력하고 기말고사 이원목적 분류표를 작성한다. 이원목적 분류표는 기말고사 시험 문제 정보가 담겨있다. 어떤 내용으로, 몇 점짜리 문제를 냈으며, 정답이 몇 번인지와 같은 시험의 모든 정보가 담겨있다. 시험 문제를 공동 출제하는 경우 시험지와 이원목적 분류표를 메신저로 보내는 것은 금지된다. 비밀번호를 걸어 파일을 USB로 옮겨야 한다. 그런데 그만큼 중요한 이원목적 분류표가 시스템 문제로 다른 학교에 유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음날 학교로 긴급 협조공문이 왔다. 기말고사 문항 번호를 변경하든가 답을 변경하라고 했다. 사실 다 쉽지 않은 일이다. 시험 문항을 만드는 것도 나름의 체계가 있다. 숫자로 제시되는 정답의 경우 1번은 제일 적은 숫자, 5번은 제일 큰 숫자가 되도록 배열한다. 문자로 제시되는 정답의 경우 1번은 분량이 제일 적은 것, 5번은 분량이 제일 긴 것이 되도록 배열한다. 문제의 순서는 대체로 진도나 교과 체계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들을 하루 이틀 만에 변경해야 했다.

선생님들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다음에는 급하게 이원목적 분류표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당황스럽고 화가 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창작의 고통을 겪으며 문제를 냈는데 급하게 다시 바꾸라고 하니 화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선생님들이 잘못한 것이 없으니 더 화나는 일이다. 하지만 결국 수정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제는 시스템 안정 후 다시 받기로 한 이원목적 분류표를 수기로 작성해서 결재를 받았다. 나중에 시스템이 안정되면 다시 나이스에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문득 행정 미숙이 빚은 현실의 혼란과 어려움을 오롯이 선생님들이 견뎌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래처럼 거대한 교육 행정조직의 움직임에 새우나 다름없는 교사들은 등이 터지는 아픔을 맛보아야 하는 이 현실….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켜도 평가는 진행되어야 하기에, 그 오류의 틈을 선생님들이 헌신과 노력으로 메우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험 문제를 공동 출제한 여덟 분의 도장을 받으러 교무실을 나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고래들의 몸부림 때문에 터진 우리의 등은 누가 치유해줄 것인가.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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