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詩] 의자 / 이묘신
[디카+詩] 의자 / 이묘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6.2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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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일했으면 됐지

의자가 풀밭에서

네다리 뻗고 누웠다

쿨쿨,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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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묘신 시인의 디카시<의자>를 감상합니다.

의자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만큼 일했으니 쉬어도 되겠지, 네다리 뻗고 풀밭에 누워 쿨쿨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그리고 우리 칠남매 모두 아버지 어깨 위에 앉아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 무게 때문인지 회사 한번 쉬어 보지 못하고 정년퇴직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또 경비 일을 했습니다. 일흔 중반이 넘어서야 젊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된다며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제 너거 아버지 뭐할꼬?” 그 말 한마디에 아버지가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충분히 살 만하실 텐데도 그런 걱정을 했습니다.

아버지라는 그 책임감이 저토록 무거운 것일까?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떤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불안하셨던가 봅니다.

결혼과 출산 양육에는 냉혹한 자기희생과 책임이 따릅니다. 그걸 알지 못하고 그런 것을 맞이했다가는 가족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고 어느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젊은 세대 그리고 아이를 낳았지만 힘들어서 못 키우겠다고 아이를 학대하거나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책임감으로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할 구성원이 가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라서 쉬어보지도 못하고 오롯이 가족들이 편안하도록 의자 되어주어야만 하는 그 무게는 견디기 힘들면서도 견뎌야 하는 책임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묘신 시인의 디카시<의자>도 감당하기 힘든 책임감 때문에 몇 번이나 쓰러지기도 했을 겁니다.

이제는 젊은 사람에게 민폐가 될까 봐 걱정하는 우리 아버지 연세쯤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잠들고 있다가 언제 벌떡 일어나 또 무슨 일을 할지 기대가 됩니다.

글=박해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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