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민속학자 송석하의 부와 학문』을 말하다
신간 『민속학자 송석하의 부와 학문』을 말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6.1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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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민족주의자의 민낯을 보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1996년 정부에서 송석하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고 이듬해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한 사실을 비판한 책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그의 민속예술에 대한 관심을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1946년 송석하가 초대 관장으로 재직했던 ‘국립민족박물관’을 그 뿌리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본격적인 왜곡은 1996년 국립민속박물관의 ‘개관 50돌 기념행사’에서 비롯된다. 이 행사에서 송석하는 ‘문화민족주의자’로 공인되고, 정부는 송석하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한다. 이어 이듬해에 정부는 ‘민속학의 태두’라며 그를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한다. 그리고 2004년에는 학술행사와 함께 그의 전집이 출간된다. 그가 주도해서 창립한 ‘조선민속학회’ 90주년이던 2022년에는 충남 태안에 있는 묘역에 공적비를 건립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송석하의 가계와 행적에 관심을 기울인 연구는 전무하다. 그의 면모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빈농으로 태어난 아버지 송태관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2년 만에 ‘참판’에 해당하는 고위직으로 승진한다. 송태관은 당시 일본 천황과 고종황제로부터 훈장도 받는다. 낙향한 후에는 사업가로 변신했으나 실패하고, 이후 사이토 총독과 접촉하면서 간척공사를 통해 경제적으로 재기한다.

아들 송석하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1년 만에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다. 이후 곧바로 아버지가 재기하고, 그는 단 1편의 민속학 논문을 발표한 뒤 조선민속학회를 결성한다. 그런데 이 학회에 참여한 민속학자는 손진태와 아키바 다카시 2명뿐이었다. 봉산탈춤 시연행사를 같이 참관했던 민속학자는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학회지 『조선민속』 3호는 경찰 출신 일본인 이마무라 도모의 고희 기념 특집으로 출간된다. 그는 1930년대 이후 총독부의 ‘농촌진흥운동’ 등의 시책에 호응하는 글을 다수 발표했다. 그 요지는 민속이 ‘단지 과거의 잔존물이 아니라 개량하여 지금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송석하가 가장 애착을 가진 종목은 ‘봉산탈춤’이었다. 그는 이 종목을 일본에 보내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식민지 민속조사’의 책임자였던 무라야마 지준이 참관하는 시연행사를 열고, 이에 고무되어 ‘향토무용대회’도 개최한다. 그의 노력으로 1940년 총독부에서 봉산탈춤을 ‘보급할 종목’으로 우선 지정하고, 총독이 참관한 가운데 공연을 선보인다.

더욱이 송석하는 1943년 백두산 탐방 학술연구단에 조선인으로는 유일하게 참여한다. 이 행사에는 백두산 천지에 배를 띄우고 태평양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해방 후 그의 행보는 정치 또는 문화 행정에 주로 맞추어졌다. 그의 행적에서 일관성을 찾기는 힘들다. 다만 미군정청에 근무하던 인류학자와 긴밀하게 접촉한 것은 맞다. 그 덕분인지 그는 1946년에 출범한 ‘국립민족박물관’의 초대 관장으로 부임한다.

송태관과 송석하 부자는 시종일관 정치 권력에 밀착한 행보를 보였다. 대한제국-일제강점기-미군정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정치 권력과 멀어진 적은 없었다. 필자는 이러한 인물을 ‘문화민족주의자’로 공인하려는 입장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더불어, 기본자료라 할 수 있는 해당 인물의 가계와 행적이나 이미 발표된 다른 분야의 연구성과를 검토하지 않는 풍토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올해 6월 출간된 『민속학자 송석하의 부와 학문』은 오석민·박중훈·이용찬 3인이 공동저자로 나와 있다.

- 편집자 붙임.

오석민 지역문화연구소장, 세종시무형문화재위원, 전 충남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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