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백성을 생각하는 달이다
6월은 백성을 생각하는 달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6.12 23: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7) 선안나-온양이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의병의 날(1일), 현충일(6일), 봉오동전투 이긴 날(7일), 한국전쟁(25일), 김구 선생 서거일(26일)이 들어있다. 흔히 ‘호국 영령’을 기리는 달이라고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 희생을 가슴에 새기는 달이다. 유명(有名)과 무명(無名)은 관계없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민중(民衆)에 주목하게 만든 책을 펼쳐 든 며칠, 지독한 신열(身熱)에 시달렸다. 한 가족,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에 오른 ‘명호네‘’를 만나서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6개월 후인 12월, 아슬아슬한 운명 쌍곡선을 탄 가족사다.

동화작가 선안나씨가 쓰고 삽화가 김영만 씨가 그린 ’온양이‘. (2021년 ‘Dear Onyang’이라는 제목으로 영문판도 나왔다) 흥남 철수 작전을 배경으로 쓴 국내 최초 그림책이다.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세계 전쟁사 가운데 가장 큰 해상 철수 작전이 배경이지만 글은 아프고 그림은 그 아픔을 더 부추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온양이’가 누군지 먼저 알아야 한다. 흔히 흥남 철수 작전 때 투입됐던 ‘메러더스 빅토리아호’가 피란민을 마지막으로 태운 배로 알고 있는데 아니다. 이 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필요한 짐과 장비를 실어날랐다. 퇴역하는가 싶었는데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전장(戰場)에 다시 투입됐다. 물자 수송선이다. 이 배는 당시 총 10만 명 피란민 중 1만 4천 명을 후방으로 실어날라 생명을 구했다. ‘수송선 중 마지막’으로 흥남 부두를 떠났을 뿐이다. (영화 ‘국제시장’에 실감 나게 그려졌다)

그러면 마지막 배는? ‘온양이’다. 정확하게는 ‘온양호’다. 그 설명은 곧 이어진다. 온양호는 수송선이 아니다. 해변까지 닿을 수 있는 LST였다. (메러더스 빅토리아호는 부두(埠頭)만 이용 가능했다) 이제 주인공을 소환할 차례다. 그림책 맨 마지막 문장은 ‘안녕, 온양아’다. 이별이 아니고 새로운 만남이다. 이 배에서 태어난 ‘아기’다.

시작은 전쟁통에 폭격으로 아내를 잃고 앓아누운 할아버지 놀란 목소리로 시작된다. “아니 저게 뭐냐?” 수상한 장면은 곧 위기였음을 눈치채게 한다. 아버지는 전쟁터를 나가 소식 끊긴 지 몇 달째다. 가족은 다섯이지만, 아니 여섯이다. (엄마는 새 생명을 간직하고 있었다) 생사기로(生死岐路), 갈림길에 서 있었다. ‘명호네’는 길을 떠난다. ‘남으로’ 가라는 할아버지 마지막 말씀에 따라. 아비규환(阿鼻叫喚), 무간지옥(無間地獄)을 경험하는 여정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글과 그림은 많은 것을 한꺼번에 설명하지 않는다. 여백(餘白)에 남겨둔 슬픔과 고통은 독자 몫이다. 읽고 보는 내내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다니고 추위에 벌벌 떨고 ‘제발’이라는 단어만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천신만고 끝에 배에 타게 된 가족, 거기서 새 생명을 안게 된다. ‘마지막 배’에서 ‘첫 생명’을 맞이하게 된다. 아기 이름이 ‘온양이’다.

슬픔과 비극을 딛고 비록 반쪽이지만 ‘자유’를 얻는다. 아이 이름이 ‘자유’였으면 ‘반공 동화’가 될 뻔했다. 이른바 ‘국뽕’.

작가가 아동문학 길을 택한 지 20년째이던, 2007년에 쓴 평론집, ‘천의 얼굴을 한 아동문학’에 주목한다.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책 2부, ‘아동문학과 이데올로기’에서 반공주의 중심을 주제로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한국전쟁과 분단이 민족의 삶에 준 질곡을 새삼스레 아프게 헤아려 보게 됐다’는 말.

선 작가는 지난 5월, 광주민주화항쟁 때 입은 트라우마를 평생 겪으며(한쪽 눈을 잃고 한쪽 귀가 안 들리는 기막힌 그때) 살면서도 이를 딛고 ‘가장 약한 이가 잘 사는 사회가 되길 기도하며…’낸 김근태 화백 일대기, ‘들꽃처럼 별들처럼’을 동화책으로 출간했다.

‘백설 공주’는 윤색되어 유통되고 있다. ‘왕자’라니? ‘미녀와 야수’는 또 어떻고? 작가 사명은 ‘본질을 규명하는 일’이다. 6월은 백성을 떠올려야 하는 나날이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