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스팅’ 사랑,‘베고니아’보다는‘선인장’처럼
영화 ‘고스팅’ 사랑,‘베고니아’보다는‘선인장’처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6.0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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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팅>에서 콜(크리스 에반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잘 생기고 선량한 농부다. 생긴 게 <어벤져스>의 ‘캡틴(크리스 에반스)’같다. 어느 날 그는 시장에서 이웃한 꽃집을 대신 봐주다가 세이디(아나 디 아르마스)라는 절세 미녀를 만나게 된다. 세이디는 집에서 키울 꽃을 원했고, 처음에 콜은 ‘베고니아’를 추천해준다. 하지만 이틀에 한 번씩 물을 줘야 한다는 콜의 말에 세이디는 일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운다며 부담스러워한다. 이에 콜은 애정이 덜 필요한 식물로 2주에 한 번씩 물을 주는 ‘산세베리아’를 권한다.

하지만 세이디는 두 달 정도 집을 비울 때도 있다면서 산세베리아마저 어려워한다. 그러자 콜은 살짝 삐딱한 투로 세이디에게 이렇게 말한다. “집을 늘 비우는데 왜 식물을 원하세요?” 그랬다. 콜은 어떠한 생명도 쉽게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는 아무리 방치해도 시들지 않는 조화(造花)를 진지하게 추천하지만 “그건 너무 슬프다”면서 세이디는 그냥 처음에 추천했던 베고니아로 달라고 말한다.

허나 그녀에게 가면 죽을지도 모를 베고니아를 바라보면서 콜은 “미안하지만 못 팔겠다”고 하고, 그 때문에 세이디와 조금 다투게 된다. 그때 막 원래 꽃집 주인이 오고, 결국 베고니아는 세이디에게 팔린다.

비록 첫 만남부터 다투긴 했지만 콜과 세이디는 이미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 상태. 결국 뒤쫓아간 콜이 세이디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면서 둘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처럼 평생 기억에 남을 하루를 보내며 연인 사이가 된다.

하지만 이야기도 잘 통하고 같이 잠까지 잤으면서 그날 이후 콜은 세이디와 연락이 닿질 않았다.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던 것. 미술관 큐레이터로 해외 출장이 잦다는 말만 남긴 채 세이디는 그렇게 잠수를 타버렸다. 참, 제목인 ‘고스팅(Ghosted)’은 ‘잠수타다’는 의미다. 하여간 마음 뺐어가 놓고 잠수타는 것들이 세상에서 제일 나빠.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남겨진 콜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사실 연애란 게 그렇다. 그건 꽃과 같은 식물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사랑에도 생명력(수명)이란 게 있기 마련이어서 어떤 사랑은 베고니아처럼 이틀에 한 번씩 물을 주며 돌봐야 하는데 반해 어떤 사랑은 산세베리아처럼 2주에 한 번씩 물을 줘도 굳건히 버틴다.

하지만 세이디는 산세베리아처럼으로도 사랑할 수 없는 여자였다. 정체가 미국 정부의 비밀요원이었거든. 한번 작전 나가면 한두 달은 집을 비웠고, 연락도 거의 안됐다. 콜이 그걸 미리 알았어도 첫눈에 반한 사랑은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불가항력적이기 마련. 해서 콜은 세이디를 이해한다는 의미로 두 달 동안 물을 안 줘도 거뜬히 살아 있는 선인장을 선물로 사들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언제나 연애가 어려운 건 일단 시작하고 나면 배려심과 이기심 사이의 외줄타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기다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한데도 한쪽으로 치우치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터져버리기 일쑤라는 것. 그래서 때때로의 즐거움을 뒤로 한 채 연애는 사실 피곤한 일이고, 대다수 연애는 베고니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해서 첩보액션을 가장한 멜로물인 이 영화는 베고니아보다는 선인장 같은 사랑을 감히 추천한다. 베고니아처럼 피곤하게 연애하지 말고 신경 안 쓰고 내비둬도 잘만 살아 있는 선인장처럼 사랑하라는 것. 그렇게 선인장은 사막의 매마름과 황량함을 탓하지 않는다.

선인장은 ‘다육식물’이다. 사막이나 높은 산과 같이 건조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줄기와 잎, 뿌리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살아가는 식물이라는 것. 그러니까 겉은 매말라 보이고 가시까지 달려 있지만 몸 안은 이미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 자주 못 보거나 연락 안 해도 사랑의 생명력은 무지 강하다. 반면 베고니아는 예쁜 꽃이지만 몸 안에 약간의 독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자주 연락하면서 자주 보면 자주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는지.

그렇다면 이 글을 쓰는 저는 선인장처럼 사랑하냐고요? 지금 영화 이야기 하고 있거든요. 좋아죽는데 우째 참아요. 어디 뭐 도(道) 닦으려고 연애합니까. 어차피 영원하지도 않을 거, 뜨거울 때 자주자주 봐야죠. 싸우든가 말든가. 실수도 하고, 아프니까 인간 아니겠어요? 2023년 4월 21일 애플tv 공개. 러닝타임 117분.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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